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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한국인의 성명임이 분명한 이름이 등록되어 있길래, 대체 왜 한국어 입문 수업을 들으러 올까 궁금했다. 한 프랑스인 친구가 아마 한국 출신 입양인일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아, 그런 경우가 있겠구나.
한국 출신 입양인들의 역사는 벌써 65년이나 되었고, 그 인원은 약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 시기는 그렇다 치고,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국제 원조를 받는 나라(受援國)에서 주는 나라(供與國)로 변신한 뒤로도 여전히 해외로 입양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출생아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한 어린이가 입양된 후에는 한국어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희미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을까?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3~8세에 프랑스어를 쓰는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 출신 성인들은 한국어를 완전히 잊었다고 한다.
그들의 뇌에는 한국어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만 8세까지 한국어를 쓴 경우에도 무의식적이나 간접적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한국어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들은 프랑스어는 완벽하게 구사한다.
한국인 이름을 가진 학생도 이런 경우였을까? 하지만 이 학생은 등록만 하고 수업을 한 번도 나오지 않아 결국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첫 수업시간
"제 이름은 나희예요.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저는 한의사예요"라고 자기 소개 시범을 보여준 뒤, 각자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했더니 첫 학생이 "저는 한의사예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뭐! 말도 안 돼!!" 하고 버럭 소리쳤더니, 당황한 학생이 "제 이름은 아니사예요"라고 다시 말한다.
아. 민망하여라.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거기! 이름이 뭔가!"라는 추궁에 주인공이 "채송압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죄송하다는 말 말고, 이름 말하라고 이름!"라는 고함이 되돌아온 상황과 비슷하다.
나란히 앉은 두 학생, 사라(Sara)랑 사라(Sarah). 짝을 지어 대화한 다음, 서로를 소개하라고 했더니, 이 두 사라가 이렇게 말했다.
사라 : 이 친구는 사라예요. 사라는 내일 오전에 공부를 하고 오후에 도서관에서 일할 거예요.
사라 : 이 친구는 사라예요. 사라는 내일 오전에 공부를 하고 오후에 도서관에서 일할 거예요.
"아니! 그냥 반복하면 어떻게 해요. 짝꿍에 대해서 잘 알아보고 제대로 다시 소개해 봐요!"
그랬더니 진짜란다. 학교도 같고 전공도 같고 수업도 다 같이 다니고 취미도 같고 알바도 같고 이렇게 거의 모든 일정을 같이 소화하면서 이렇게 지낸지 몇 년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어 수업에도 같이 앉아 있다. 이름 칸에 홍길동 써서 나무랐는데 이름이 정말 홍길동인 상황이랄까.
학생들 중에는 케이팝 팬들이 가장 많다. 그중에서도 아미(방탄소년단 팬)가 압도적으로 많다. '쩔어'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직업 이름을 하나씩 가르쳐주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노래를 들을 때마다 수업 시간에 교재로 쓸 만한 쉬운 가사가 있나 열심히 들여다보는데, 안타깝게도 시적이고 압축적인 가사가 많아 우리 학생들 수준에는 너무 어려워서 그다지 활용은 못 하고 있다.
해요체로 된 문장만 가르치는 단계라서 다른 종결어미로 된 문장은 교재로서 탈락이다. 그 대신 학생들이 가사에 대해 질문하면, 다른 곡과 연결된 숨은 의미, 멤버들의 성격 등까지 아미로서 입체적인 지식을 활용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아내가 한국인인 남편들도 종종 있고(아내에게 배우기는 어려운가보다- 역시 가족에게 가르치는 것이 제일 어려움), 외할머니가 한국 사람인데 영상통화할 때 조금이라도 대화를 하고 싶어서 온 젊은 학생도 있다.
외할머니가 부산 출신이라길래 이 학생을 위해서는 특별히 부산 사투리도 가르친다. '메이야, 밥 잘 묵고 다니나? 여긴 언제 오노?' 표준어만 가르쳐서는 외할머니와 대화하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자메이카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영국에서 일했던 학생과 이야기할 때 영어가 쏙쏙 잘 들려서 '어머낫! 내 듣기 실력이 갑자기 엄청 향상되었나 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메이카 영어는 전세계인들로부터 듣기 좋은 발음이라고 인정받는 거로 유명했다. 친구에게 한국어로 편지를 쓰라고 했더니 아래 사진에 나오는 이런 사연을 공유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