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로 드는 길송광사로 드는 길이 평온하다. 거목의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열주처럼 늘어서 있다. 이 길을 걷는 이들을 능히 위로하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이영천
보조국사 지눌이 타락한 불교를 개혁하고자 정혜결사(定慧結社) 운동을 조직하고 세운 절이 송광사다. 지눌 이후 송광사가 조계종 중흥도량이 되면서, 본래 송광산이던 산 이름도 조계산으로 바꿔 부른다. 이는 우리 불교의 큰 맥인 조계종이 이곳 송광사에서 태동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송광사에서 바라보는 서역으론 너른 주암호가 웅장하다.
1925년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50여 일 간 일정으로 지리산 일대를 둘러보고, '심춘순례(尋春巡禮)'라는 기행문을 남긴다. 말 그대로 순례 길에 나섰다. 경건한 마음으로 종교적으로 신령스런 곳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는 기행문 서문에 '우리 땅은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이고 철학이며, 시이고 정신이다'라고 기록한다. 그의 말년 친일로의 변절이 아쉬우나, 적확한 말임에는 틀림없다.
그도 조계산을 다녀간다.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를 넘어 송광사에 들었다. 송광사에 든 기행문 제목을 '조선불교의 완성지인 송광사'라 짓는다. 그러면서 송광사를 '절집 중 맏형의 집에 드는 느낌'이라 표현한다. 그렇다. 송광사는 그런 곳이다. 삼보사찰(三寶寺刹, 불(佛), 법(法), 승(僧)의 보(寶)를 간직한 사찰. 불보-통도사, 법보-해인사) 중 승보에 해당한다. 수도정진에 있어, 불교적인 계율을 가장 잘 지켜내고 있는 도량이다. 고려 이후 16명의 고승(국사)를 배출한 사찰이기도 하다.
뛰어난 지혜의 공덕으로 이룬 청량각
송광사에 이르는 길을 주암호 쪽에서 잡는다. 최남선처럼 순례할 만큼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보성강 물줄기를 막아 만든 주암호가 청청(靑靑)하기만 하다. 산문(山門)에 드는 낯선 객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읽힌다.
호수가 가슴을 열어 짙푸르게 멍이 든 속내를 가감 없이 내보인다. 짙게 멍이 든 그 빛깔에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청량각에서 흘러내리는 청량한 송광천이 주암호로 든다. 바람은 맑고 달콤하다. 청량(淸凉)이란 말은 '뛰어난 지혜의 공덕'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뜻한다 하니, 몇 겹으로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