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순 203 고지의 일본군 280 미리 유탄포. 이 포의 우세로 난공불락의 러시아 요새를 뚫을 수 있었다고 함.
박도
그런 뒤 나는 그곳 안내판을 보면서 혼자 203고지로 올라갔다. 203고지 정상에 오르자 일본군 전몰자 위령탑과 러시아군 포진지, 일본군 280 미리 유탄포 전시장, 203고지 진열관 등 볼거리가 무척 많았다.
안내문이 한자인지라 대강은 읽을 수 있었다. 러일전쟁 최대 격전지 뤼순전투에서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적절한 지형 이용과 280mm 유탄포 등으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러시아 요새를 뚫었다.
그곳의 안내문과 전시물로 한 눈에 그때의 전투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군은 지형이나 병력 등으로 불리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난공불락 요새를 뚫은 것은 무엇보다 전투에 임한 병사들의 강한 정신력이었다. 전투에서 승리 요인은 무기 못지 않게 정신력이었음을 이 전투가 말해 주는 듯했다.
내가 그곳 전적지 안내문을 읽으면서 카메라로 부지런히 전시물을 촬영하는데 박 회장이 헐떡이며 뒤따라 올라왔다.
"어르신, 산삼을 많이 드셨나 봅니다."
"그런 것 먹은 적이 없습니다. 난 육군 보병 출신이요."
"아, 네에."
지린성 청산리 전적지나 봉오동전적지 등과 국내 호남의병지 답사 때도 그런 일이 더러 있었다. 독립군 전적지나 의병 창의 지역은 대부분 깊은 산골 궁벽한 곳이요, 100~200년 이전의 일이라 정확한 현장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정확한 전적지를 대충 지나치지 않았고, 내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현장을 카메라에 부지런히 담았다. 이러한 내 체력은 고교시절 신문배달로 그리고 육군보병학교 시절의 훈련과 현역 보병소대장 시절에 산야를 밤낮으로 누볐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