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경역 프브라니치나야 플랫폼(2009. 10. 30. 촬영).
박도
때로는 침묵이 이롭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인 포브라니치니야 역에서 러시아 관리가 뭐라고 묻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입을 꽉 다물고 여권만 보여줬다. 그러자 그 관리는 내게 한참 질문을 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흔들자 그는 씩 웃고는 통관 스탬프를 '쾅' 찍어줬다.
때로는 침묵이 이롭다. 세상을 살다보면 잘 알지 못하면서도 함부로 지껄이다가 화를 입는 일이 많다. 그래서 "혀 밑에 도끼 있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변화무쌍한 게 세상사다.
국경지대에서는 사진 촬영에 주의해야 한다. 이전에 나는 중국 단둥에서 국경 압록강의 사진을 찍다가 공안에게 걸려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우리 일행의 하루 일정을 망쳐버렸다. 이후 국경 일대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무척 조심한다.
중러 국경인 포브라니치니야 역은 안중근이 한의사 유경집의 아들 유동하를 대동케 한 국경 역이다. 유동하를 얘기하자면 답사자로서 빠트릴 수 없는 지명이다. 그래서 주변을 두세 번 살핀 뒤 007 제임스 본드처럼 슬쩍 한 컷 카메라에 담고는 카메라조차 가방 속에 감췄다.
다시 중러 국경인 중국 측 쑤이펀허 역에서 중국 관리들에게 입국 통관절차를 밟았다. 그런 뒤 그곳을 떠날 때까지 무려 5시간을 텅 빈 객차 안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내 인내력을 시험하는, 중국인들의 '만만디', 곧 '느림의 미학'을 마냥 즐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