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열차 반대행동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지리산미안해' 프로젝트의 산 모양 핸드사인을 하고 있는 최지한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20대에 특별한 생각 없이 왔어요. 살아보니까 계속 살기 좋더라고요. 죽세공예가 좋은 점은 저기 저 책장 한 켠에 있는 연장이 다라는 거에요. 담양에서 선생님 옆집에 살면서 일하고 배웠어요."
특별한 이유 없이 하동에 오게 됐는데, 하동의 맛을 알아가며 살아온 세월이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는 담양에서 배워온 죽세공예로 밥벌이를 하고, 때에 따라 건설 현장과 농가 등에서 필요한 일손을 보태거나 산림 조사 일을 하기도 한다. 단순명료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는 그가 어쩌다 반대대책위의 집행위원장까지 맡게 됐을까.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 하겠지? 언젠간 하겠지? 하면 안 되는데...'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어요. 보도자료가 나오긴 하지만 굳이 찾아서 보는 사람은 잘 없잖아요. 관련된 분야에 있는 교수님께 물어보곤 했어요. 산악열차 정말 놓이는 거 아니냐고. 교수님은 현행법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고, 안심하고 있었지요."
걱정은 있었지만, 현행법상 가능한 일은 아니라 하니 조금은 안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5시, 막연했던 걱정이 선명한 현실로 눈앞에 드러났다. 교수님이 '상황이 달라졌다'며 첨부파일을 보탠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담긴 회의 자료였다. '어, 큰일 났네?'
"지난 2014년 하동에서 회남재 숲길 걷기대회를 처음 열었는데 3000명이 참가하면서 대성황을 이뤘거든요. 군수님이 그 자리에서 하동을 대한민국의 알프스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무지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던 사업이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보고 있어요. 사업 내용은 물론 같습니다만."
윤상기 하동군수는 당시 '대한민국의 알프스 하동을 만천하에 선포합니다. 더 큰 하동 더 새로운 하동으로 뛰어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더욱 넘치는 포부로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를 추진시키기 위해 힘써왔다고 한다.
"정부나 경상남도를 상대로 계속 노력을 하셨죠. 그분 나름대로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정부와 경상남도로부터 인정받았어요. 긍정적인 논의가 되던 중에 코로나19가 왔죠. 그러면서 정부에서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국가관광전략 회의' 같은 것들이 활발히 진행되는데, 산악관광활성화가 의제로 채택되었어요.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거고, 저희로서는 불행이 시작된 거죠."
"상생 조정기구인 '한걸음 모델'을 적용하는 시범 사업으로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현행법상으로는 불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에 정부 부처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발생한단 말이죠.
그러니 그런 데서 오는 시행착오를 하동에서 미리 겪어보고, 그것을 토대로 특별법을 제정해 전 국토를 대상으로 적용이 될 때는 이해관계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예요.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도 걱정이지만, 이 특별법은 정말 더 무서운 거예요. 지리산 산악열차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지리산을 둘러싼 다른 지역에서도 너도나도 케이블카 설치하려고 할 거예요. 전국의 산림들도 무차별적으로 개발될 여지가 생기고요."
왜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만 기재부에서 진행할까
박근혜 정권 때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제안한 산악관광활성화 정책이 받아들여지면서 산림규제완화 계획이 세워졌는데 거기에는 산림 민영화, 초지 개발 등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때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도 한창 화두에 올라있었다.
"그런데 2016년 겨울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됐잖아요. 그래서 묻혀버렸어요. 그러다 정권이 바뀌고, 이런 사업들이 흐지부지되거나 실패로 돌아갔죠. 그런데 이번에 다시 너무나 비슷한 문구로 비슷한 사업을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니까... 전경련과 연관된 집단이 다시 이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은 아닌지 추측하는 거죠. 국가관광전략 회의에서 논의된 관광산업활성화와 관련된 의제 대부분이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인데, 산악관광활성화 정책 중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만 유독 기획재정부에서 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지 않나요?
산악관광활성화정책과 관련한 배경과 목적, 목표를 설명할 때 쓰이는 주요 수치 중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 수치예요. 이 정책과 관련해서 작성된 '관광산업 규제혁신 추진방안'이라는 서류에서는 우리나라 산지 면적이 64%라고 하더라고요.
이 수치는 2014년 전경련에서 정부에 제안한 '산악관광활성화를 위한 정책건의'에 인용된 수치와 같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산림청 통계를 들어가면 이미 산림면적은 2015년에 벌써 63.2%로 줄었거든요. 산악관광활성화 정책 입안자들이 정책을 만들어낼 때 이런 기초적인 자료 확인 절차도 없이, 그냥 복사해 붙여넣기로 만든 문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이건 아니지 않나요? 이렇게 허투루 만든 정책이 혁신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놀랍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