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미국의 한미 친선 비영리재단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온라인으로 진행한 밴 플리트 상 시상식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밴 플리트 상'은 매년 한미관계에 공헌한 인물 또는 단체에 주어지는 상으로 방탄소년단은 음악과 메시지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키고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연합뉴스
중국 외교부의 개입으로 다소 잠잠해진 이번 BTS 사건은 해외 예술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집단적 비난이라는 점에서 2016년 1월의 트와이스 쯔위 사건과 유사하지만, 사태의 본질은 상당히 다르다.
그룹 트와이스의 타이완(대만·중화민국) 출신 멤버인 쯔위가 2015년 11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타이완 국기를 흔든 일에 대해 2016년 1월에 중국인들이 공격을 가한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타이완 국기를 흔드는 일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심으로 하나의 중국을 이룬다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중국인들은 분개했다.
반면, 지난 7일 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 비영리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로부터 밴플리트상을 받으면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중국인들이 '한국전쟁으로 인한 중국인들의 희생을 무시한다'며 반발한 일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인들이 볼 때 이번 사건은 미중관계 및 한미동맹과 관련돼 있다. 미중관계가 험악해지는 상황에서 한중관계보다 한미관계에 좀더 힘이 실리는 것에 대한 중국인들의 경계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국인들한테 이 역시 민감한 문제이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된 사안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쯔위 사건보다 BTS 사건에 더 큰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BTS를 매개로 분출된 것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삼성전자 등이 BTS를 내세운 중국 내 광고를 내린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유형의 사건은 미·중 양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 예술인과 기업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쯔위 사건 같은 유형이 더 민감해도, 한국 입장에서는 BTS 사건 같은 유형이 더 민감할 수 있다.
한국이 당사자가 아닌 국제관계 중에서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제1의 국제관계는 북미관계다. 현재까지 그래왔고, 앞으로 한동안도 북미관계가 제1위 국제관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경우에는 그 '제1'이 단독 제1일지 공동 제1일일지 장담할 수 없다. 미중관계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관계가 악화되면 한반도가 긴장에 휩싸이지만, 그로 인해 한국인들의 세계 활동이나 경제 활동이 당장에 크게 위축되지는 않는다. 한국인들의 활동이 북한과 깊이 연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관계가 악화되면 당장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활동이 미·중 양국과 긴밀히 관련돼 있을 뿐 아니라, 미·중이 한국을 상대로 '우리야, 저쪽이야?'라며 택일을 강요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관계로 얽혀 있고 한국이 중국보다 미국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중국인들이 모를 리 없다.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에서 상을 받는 한국 예술인들이 미국을 배려하는 수상 소감을 발표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BTS가 가진 세계적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처한 지금의 다급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사상 최악의 미중관계로 인해 중국이 포위되고 이로 인해 중국인들이 이웃나라들의 태도에 예민해진 상황에서 '한·미 양국 공동의 고난'을 강조하는 수상 소감이 BTS에서 나왔기 때문에 특히 민감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미국 쪽으로 더 기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BTS의 수상 소감을 매개로 분출됐다고 볼 수 있다.
지정학적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