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점점 채워지는 청담동 자택 거실.어린아이들이 뜀박질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실은 점점 발을 디딜 틈이 없어질 정도로 그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현화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두 아는 것처럼 아니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또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진작에 본문 교정은 물론 표지 그림까지, 표지 디자인까지 다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출간까지 시간을 더 갖게 되자 원고의 끝없는 보완과 수정이 또 이어졌다. 책 두 권을 넘나들며 선생과 나는 현대미술과 시인 이상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 희망하는 바를 깨알 같은 글씨, 개미의 행렬 같은 글줄에 모두 쏟아냈다.
그렇게 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시련이라 여겨지는 이 시간을 관통하는 그와 몇 년 동안 한 달에 거의 한두 번씩 만나며 지냈다. 그에게 지난 몇 년은 과연 시련을 견디는 시간이었을까. 적어도 내 눈에 그리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일지도 모르는 그 끝을 기다리는 나와 달리 그는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쉴 틈없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개봉영화란 영화는 모두 찾아보며, 만나면 좋은 사람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그는 판결을 기다리는 대신 그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더불어 책을 만드는 나 역시 점차 그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니던 곳을 떠나 집을 짓고, 작은 출판사를 차리느라 분주한 와중에 그와 만나는 날은 수많은 변화의 변곡점에 대응하는 나의 복잡다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항상성'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그럼으로 그의 원고를 읽고, 입력하며 곱씹고, 그의 머릿속의 자유로운 착발상의 일면을 엿보며 어느새 나는 선생의 새 책 두 권의 최종 교정지를 마주하고 있었다. 마지막 교정을 끝낸 날, 선생은 말했다.
"우리, 그동안 참 재미있게 잘 지냈다. 정말 멋있는 시간이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그는 매우 핫한 이름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앞다퉈 그를 조명했고, 기다렸다는 듯 그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어쩐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듯한 기사에 아쉬움을 느끼는 쪽은 늘 나였다.
선생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 있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나만의 우려와 달리 화가로서 그를 주목하여 전시를 제안하는 곳들도 많았다. 그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과 별개로 그의 전시는 성공적이며 작품 판매는 매우 순조롭다.
역시 그의 출연 소식에 반대 여론이 뜨거웠던 모 방송 프로그램 시청률은 최고점을 찍었고, 분당 최고 시청률 역시 그가 노래하는 장면이 차지했다. 누군가는 이런 그를 가리켜 '괴물 같다'고도 했다.
작은 출판사에서 조영남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이런 현상의 뒤에 선 그는 어떨까. 여전히 그는 영동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청담동 자택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피곤하면 달달한 것으로 떨어진 당을 충전하는 보통의 일상을 누린다. 이전보다 빼곡하게 채워진 스케줄표, 훨씬 늘어난 방문객으로 분주해졌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