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선생의 거실이자 작업실.그는 여기 앉아 그림도 그리고 책도 쓰고 손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콜라도 마신다.
이현화
시간은 흘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나는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가 다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 그뒤로도 그는 책을 만들 일이 있으면 언제나 연락을 해왔고, 그때마다 나는 부름에 응해 의견을 전하거나 또는 같이 또다른 책을 만들거나 하며 지냈다.
방송을 통해 만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설렁설렁, 대충대충, 자유로운 방식의 외피를 썼으나, 그런 위악과 과장된 제스처를 벗어던진 일상 속의 그는 소탈하고 진솔하며 재기로 반짝거리는, 만나면 늘 경탄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시간은 흘렀고, 미술품 대작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는 그를 뉴스를 통해 보면서 걱정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공교롭게도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독도 발언'으로 칩거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그때와 똑같은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또 반복되고 있구나, 하는 묘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2017년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선생을 만나, 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 내가 한 일은 다름아닌 '입력'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게 30대 중반이었다. 그때도 이렇게 숱한 밤낮을 입력하는 걸로 씨름했다.
40대 후반을 지나 50대 초반에 접어드는 나로서는 이 나이까지 그의 깨알 같은 글씨를 입력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와의 작업 방식은 이러하다. 그는 쓴다. 붉은색 펜으로 어떨 때는 A4 용지에, 어떨 때는 노란색 서류 파일에 쓴다. 쓰다가 생각이 엉뚱한 데로 흐르면 글은 여기로 저기로 마구잡이로 흐른다. 수많은 지시선을 따라 그 원고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입력하는 일은 그 때문에 난이도가 매우 높다.
내가 바쁘다고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그렇게 입력해서 출력해 가져가면 그는 또 쓴다. 고치고 또 고친다. 앞에 있던 내용이 뒤로 가기도 하고, 기껏 입력한 내용이 모두 날아가기도 한다. 편집자로서 내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그가 일단락이 되었다고 할 때까지 입력과 수정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불쑥 묻는다.
"지금까지 내용이 어떠냐?"
그럼 나는 대답한다. 원고의 장단점, 보완할 점에 대해 답한다. 그는 전적으로 수용한다. 다시 또 쓰고 나는 또 다시 입력하고 다시 수정한다. 조영남과 책을 만드는 일은 이 과정의 무한 반복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밝힌다. 이른바 '미술품 대작 사건'이 불거진 뒤 몇몇 언론사에서 물어물어 내게 연락을 해왔다. 취지는 '그림도 대작이라는데 그가 쓴 책도 혹시 대작이 아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고,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모 방송사에서 집요하게 연락을 해왔다. 급기야 "고스트 라이터"가 나타났으니 '사실대로 밝히라'고 압박해오기까지 했다.
조영남 선생의 책을 대신 쓴 일명 대필작가, 유령 작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 '고스트 라이터'를 나와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원고를 다 쓴 뒤 보내오는 다른 저자라면 몰라도 조영남 선생이 쓴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내 손으로 입력해서 만든 책에 고스트 라이터가 있을 리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더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마침내 '현대미술'에 관한 1차 원고를 끝내는 날, 이제 이걸로 편집에 들어가도 좋겠다고 서로 합의한 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말이야, 말러 교향곡을 다시 들었는데 이게 기가 막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말러 음악을 듣는데 시인 이상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말야. 이상에 관한 책을 한 권 더 쓸까 해."
이미 그는 구상을 마쳤다. 시인 이상을 피카소, 아인슈타인, 니체, 말러 등과 같은 세계 최고 천재 반열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가상의 보컬그룹을 꾸리고, 이상의 시로 가사로 삼아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게 하겠다는 기가 막힌 포부가 이어졌다. 이미 이를 주제 삼은 그림까지 그리기 시작했다며 완성한 첫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인 이상의 '덕후'다. 그의 '덕질의 역사'는 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그의 작품을 만난 이래 6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시인 이상 덕후인 그가 마침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쓰는 사람이니 그에 관해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고,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얼핏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한다고 하니 나는 역시 오케이했다. 기꺼이 다시 또 그 무한 루프로의 진입을 받아들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바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얼핏 허무맹랑해 보일지언정 끝까지 그런 일은 없다. 게다가 나는 책이 언제 나오느냐에 큰 관심이 별로 없었다. 선생이 들으면 어떠실지 모르지만 얼마나 팔리느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책을 만드는 그 과정, 그 시간을 통해 조영남이라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웠고 그와 그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면 뭐든 오케이였다. 그렇게 또 시인 이상에 관한 기상천외한 책을 만드는 무한 루프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그와의 작업 그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도 여겨졌다. 누구라서 그와 더불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랴. 나는 그것만으로도 오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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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조영남 책을 내겠다니 돌아온 말 "무슨 일을 겪으려고?">로 이어집니다.
보컬그룹 시인 李箱과 5명의 아해들 - 조영남의 시인 이상 띄우기 본격 프로젝트
조영남 (지은이),
혜화11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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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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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물었다, "조영남 그림이 대작이라는데 책은 직접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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