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동 신기시장 내 청주식당 순댓국순댓국이 아니라 곰탕이다. 머릿고기만 얌점히 들어 있다. 순대는 따로 내 준다. 맛보기다. 이런 순댓국은 일찍이 없었다.
이상구
주안동 신기시장 내 청주식당은 집단경영체제다. 은예, 은순, 은영 정씨 가문 세 자매가 힘을 합해 가게를 냈다. 큰언니 은예씨가 주방, 둘째 은순과 막내 은영씨가 홀과 카운터를 번갈아 담당한다. 16년 전 가게를 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 자매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사람인지라 서운할 때도, 야속할 때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티 내지 않았다. 소문난 의좋은 자매들이다.
가게 이름은 청주지만 이들은 의외로 인천 토박이다. 지금은 다리가 생겨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섬, 영종도가 고향이다. 오래 전에는 그저 한적한 섬마을이었는데,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를 매립해 국제공항을 만들면서 일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때 정가네 자매들은 함께 뭍으로 나왔다. 그 이전부터 식당을 했던 큰 언니의 제안으로 순댓국집을 하게 됐다.
청주식당의 순댓국은 얼핏 순댓국처럼 보이지 않는다. 곰탕 같다. 국물은 말갛다. 아무런 간이 되어 있지 않다. 다진 양념도 따로 나온다. 손님들은 저마다의 식성에 맞춰 간을 해야 한다. 건더기도 그렇다. 순대는 안 보인다. 흔한 곱창 같은 부속물도 하나도 없다. 살코기만 얌전하게 담겨 있다. 냄새도 없고 맛조차 돼지 같지 않다. 일찍이 이런 순댓국은 없었다.
전에 장사하던 청주분이 전해주신 비법에 영종도식을 접목시켰다. 돼지 내장이나 순대는 일절 배제하고 머리고기만 넣는다. 육수도 그것만 고아 만든다. 그러니까 말이 순댓국이지 실은 돼지머리국밥이다. 이름에 순대를 넣었으니 영 모른 척 할 수는 없어 순대 네댓 개를 따로 내준다. 순대는 인천식이다. 선지를 섞은 당면만 넣는다. 보기에도 맛도 깔끔하다.
"고향 영종에서 어느 집에서 잔치하면 이런 식으로 국을 끓였어요. 돼지를 잡으면 머리만 따로 삶아 국물을 냈지요. 다른 거 다 해봐도 그게 제일 깔끔하고 맛나더라고요. 그걸 응용한 거죠. 하루에 보통 10마리 이상씩 푹 고아요. 간도 그래요. 우리가 어떻게 손님을 알아요. 짜게 먹을 수도 싱겁게 먹을 수도 있는데. 다 자기 식성대로 해 드시라는 거죠."
청주는 충북이다. 충북 음식은 더 덤덤하다고 한다. 거기에 영종식 돼지국밥 레시피를 가미한 거다. 그 결과 훨씬 참하고 부드러운 명품 순댓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 청주식당이야말로 인천과 충청도가 제대로 만난 경우다. 둘이 완벽한 하나가 된 셈이다.
신기시장 순대골목엔 청주식당 말고도 비슷한 집이 십여 개다. 저마다의 맛과 전통을 자랑한다. 느낌도 맛도 다 다르다. 단골들의 취향도 갈린다. 독점적 경쟁시장의 전형이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하다. 하지만 이들은 다투거나 반칙을 쓰진 않는다. 호객행위도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각자의 솜씨로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다.
함께 사는 지혜를
몇 년 전부터 프랜차이즈 순대 식당이 크게 늘었다. 그 덕인지 과거엔 일종의 혐오식품 비슷하게 취급당하던 순댓국의 인기가 상종가다. 젊은층도 꽤 즐겨 먹는 듯하다. 솔직히 그 가격에 그만큼 영양가 높은 음식이 또 뭐가 있을까. 가성비로만 보자면 최고의 한 끼다. 거기에 인천의 순댓국은 지역 저마다의 특색을 담고 있다. 가히 대한민국 대표 순댓국이다.
1 더하기 1은 2보다 크다. 조화와 협력의 힘이다. 인천과 충청도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어우러져 살아오면서 그 위력을 절감해 왔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했으며 때로 양보하고 배려했다. 그런 슬기로운 지혜가 순댓국 한 그릇에도 담겨 있다. 저마다 편 갈라 싸우기 여념 없는 세상이 참 안타깝다. 그분들 모두 인천에 와 순댓국 한 그릇씩 나눠 드시면서 공존의 정신을 되새겨보시길 바란다. 아주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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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만 있는 이 순댓국, 할매니얼 입맛에도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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