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눈보라가 날리는 강가, 섶다리를 건너 어딘가로 가고 있는 사람들.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김삿갓 본명은 김병연이다. 조선중흥조 정조가 죽은 1800년 이후, 나라 권력을 오로지하고 있던 안동 김씨 가문이다. 세도정치는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벌족(閥族)끼리 연합한 권력이다. 안동 김씨는 세도정치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1811년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항복했다는 그의 할아버지가 김익순이다. 당시 권력의 핵심을 이루던 김조순과 같은 항렬이다. 아버지가 김○근(金○根) 항렬이고, 김삿갓이 김병○(金炳○) 항렬이다. 모두가 노론의 시파와 벽파를 이끌어 오던 방계 후손들이다.
김삿갓 할아버지가 부사가 되어 평안도 선천에 부임한다. 지역 현안을 수습하고 인심을 모은다. 민심을 안정시키고 행정기반을 잡아나갔다. 부임한 지 3달이 훌쩍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된다.
그간 많은 도움을 받은 하급관리들과 지식인들, 향반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잔치를 열어 술을 마신다. 그리곤 곤하게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난을 일으킨 홍경래 군대가 선천을 점령해 버린다. 김익순은 투항한다.
이듬해 5월까지 계속된 반란은 이내 진압되어 버린다. 권력은 차마 김삿갓 집안을 멸문(滅門)하진 않았다. 세도권력의 핵심에 있던 집안이기 때문이다. 김익순만 처형당하고, 다른 가족들은 살아난다. 온 가족이 가노(家奴)를 따라 황해도 곡산으로 숨어든다. 그곳에선 반란군에 투항한 역적이란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간다.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어린 김삿갓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난다.
약관 김삿갓이 영월에서 열린 과거에 응시한다. 시제(試題)가 '역적에게 투항한 김익순을 논하라'는 것이었다. 천재라고 이름난 김삿갓의 붓이 춤을 춘다. 글은 한여름 더위가 잊힐 만큼 시원하다. 기개는 하늘을 찌를 듯 드높기만 하다. 날카로운 벼랑에 홀로선, 곧고 푸르른 소나무가 글 한가운데 오롯하게 들어앉는다. 긴 소리를 내며, 단칼에 쪼개지는 대나무였다. 그는 과거에서 장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