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7일, 남한과 북한이 경의선 문산역과 동해선 금강산역에서 각각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공식 기념행사를 갖고 오전 11시 30분 북측 개성역과 남측 제진역을 향한 열차를 동시에 운행했다. 사진은 56년 만에 경의선이 문산역을 출발하는 모습.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진짜 평양을 갈 수 있나요. 북한 방문이 가능합니까."
내가 참석하는 모임에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사업을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양 방문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평양을 방문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은 함부로 갈 수 없고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그런 곳으로 북한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천히 찾아보면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이 꽤나 있다. 평양이나 남포에 공장을 운영하거나, 스포츠와 음악공연으로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이 있다. 북한주민을 돕기 위한 여러 활동의 일환으로 평양과 그 외 지역을 방문하기도 한다.
지금은 아득한 옛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2007년도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통해서만 2900여 명이 북한에 다녀왔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2007년도에 15만여 명이 협력사업을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했으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객은 35만여 명에 달했다.
남북 교류협력을 '보장'하는 법이 있다
북한은 어떻게 방문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는 남과 북의 주민이 만나고 서로 방문하고 물자를 주고받는 교류협력을 보장하는 법률이 있다. 바로 '남북교류와 협력에 관한 법률', 즉 '남북교류협력법'이다. 만약 이 법이 없었다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돼 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지금부터 30년 전 1990년에 제정됐다. 냉전종식이라는 세계사적 격변기에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노태우 정부는 적대적 관계로만 바라봤던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한 관계로 새롭게 설정했다. 그리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남북한 신뢰구축과 평화정착을 목표로 대북정책 전환을 시도했다. 그런데 남북교류를 촉진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양방문을 신기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실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이후 민간차원의 남북교류협력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북한산 농산물이나 수산물·광산물을 수입하는 단순교역에서부터, 평양에 남북합작으로 봉재공장을 짓고는 의류를 가공해서 수출하는 임가공 등 경제협력사업은 해마다 확대됐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대표적인 경제협력사업이다. 수천 명의 남한사람과 수만 명의 북한사람이 여기에 종사했다.
개성 고려왕조의 궁궐 만월대를 남북 공동으로 발굴하고, 남북이 다르게 쓰는 말과 글을 한곳에 담기 위한 공동사전편찬사업, 이미자·핑클·레드벨벳 등 인기가수들의 평양공연, 남북 농구경기와 방송사의 현지 중계, 남북공동 드라마 제작 등 남북한 간의 문화교류를 위한 방송·스포츠·예술 등 분야도 넓어졌다.
남북교류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보건의료·위생·농업·산림·생태환경보존 등을 위시한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이다. 초기 식량·의약품 전달과 같은 단순한 긴급구호사업에서, 남북 공동의 벼농사·양묘장 운영·병원 설립·식수 위생 등 주민들의 역량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확대 발전했다. 수많은 각 분야의 전문가·후원자들이 북한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런데 이러한 교류협력의 확대는 남북의 정치·군사적인 사건으로 중단되는 슬픈 운명을 맞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북한의 박왕자씨 총격사건을 계기로 금강산관광을 중단시켰다. 또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5.24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5.24 조치의 내용은 남북 교역 중단과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국민의 방북 불허 등 북한과의 교류 및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다. 5.24 조치로 인도적지원사업도 축소되거나 중단됐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도 모두 중단됐으며 북한 선박의 남한 해역 운항 역시 전면 불허됐다.
평양이나 남포 등 북한 내부에서 임가공을 하던 업체들은 하루아침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문을 닫아야 했다. 교역하던 업체도 마찬가지다. 짧게는 수년간 길게는 20여 년 이상 남북경협을 꾸려오던 업체들이 정치·군사적 이유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됐다.
게다가 2016년에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을 이유로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켜 버렸다.
그렇다면 30년 전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할 당시에는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을 예측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예측 가능했을 것이다. 남북한의 정치·군사적인 불안정성은 정전체제 아래서 휴전선을 걷어내지 않는 한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남북 적대적 관계를 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해 상호 이익관계로 점진적으로 전환해 나감으로써 정치·군사적인 불안정성을 점차 줄여가겠다는 정책기조로 인해 발현된 법안이 '남북교류협력법'이다. 따라서 정치·군사적인 사건의 발생은 남북교류협력 중단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확대의 이유가 돼야 한다.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한 5.24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