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3 흑유백퇴화음각(黑釉白堆花陰刻) 모란문 편병고려 후기 또는 조선 초. 높이 23cm. 다보성고미술전시관. 조선 자라병(편병)에는 유독 모란과 작약이 많은데, 자라병에 왜 모란과 작약이 많은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아니, 사실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 또한 미술사학자가 풀어야 할 몫이다. 일단 이것은 한나라 수막새 도상과 관련이 있다. 이는 조선시대 미술사에서 자세히 밝힐 것이다.
다보성고미술전시관
모란은 모란이 아니다
전도가 한번 일어나면 원래 '기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이것은 좀 복잡한 문제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고구려벽화는 불교 이전의 고구려 세계관과 불교가 만나는 지점, 그 지점을 먼저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불교 이전 고구려 사람들의 세계관을 모른다는 점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신석기미술사가 바로 그 세계관을 말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이것만 확실히 해두고 싶다. 자세한 것은 삼국시대 미술사 고구려벽화 편에서 아주 자세하게 밝힐 것이다.
고구려무덤 천장에 있는 연꽃, 우리 학계는 이것을 의심의 여지가 없이 연꽃으로 보고 있지만 세상에 이렇게 생긴 연꽃은 없다. 그것을 연꽃으로 읽는 순간 고구려벽화 해석은 외딴길로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왜 연꽃이 무덤 천장 한 중앙에 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고구려무덤 벽화, 벽과 천장에 있는 그림은 이 연꽃 하나로 모아지고, 또 그 반대로 이 연꽃에서 비롯한다. 이것을 풀지 못하는 한 고구려벽화 해석은 제자리걸음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고구려벽화의 연꽃을 연꽃으로 보는 것은, 조선 자라병에 모란이 그려져 있다 해서 그 모란을 정말 모란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고, 청동거울에 물고기가 있다 해서 그것을 진짜 붕어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도3, 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