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지인능욕' 피해자 이아영씨는 지인능욕이 "정말 악질적인 여성혐오"라고 했다. 그는 수사기관이 반드시 가해자들을 잡아서 처벌해야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소희
처음엔 괜찮은 줄 알았다. 괜찮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잠이 안 오더라. 결국 못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선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고소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걸 찾는데 갑자기 너무 서러웠다. 눈물이 막 나더라. 다음날도 또 갑자기 눈물이 나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원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데, 계속 하혈을 하고 있다"며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아영, 22살. 지난달 31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소위 '지인능욕' 피해자다.
어느 날, 피해자가 됐다
3월 23일 오후 11시 반쯤, 갑자기 친구가 '텀블러에 사진이 올라왔다'며 이씨에게 캡쳐본을 보내줬다. 친구는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지인능욕 문제를 알리는 글을 보고 혹시 자신이나 지인도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워 하루 종일 관련 사이트를 뒤졌다고 했다. 거기에 약 11개월 전 올라온 이씨 사진이 있었다. 게시글에는 "다섯 번째 제보"라고 써있었다.
지인능욕이란, 일반인 여성 사진 또는 그 사진과 성적으로 합성한 이미지를 온라인에 게시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해당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가짜 정보가 함께 게시되는데, 이씨의 경우 "남친 있는데 다른 남자 자취방 가서 둘이 술 먹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이 시대의 바른 친구네요, 매일 남자친구가 바뀐다고 합니다"라는 '허위 제보'가 더해졌다. 또 10장의 사진 중 두 장은 '아헤가오(음란물 속 과장된 여성의 표정을 가리키는 일본 은어)'를 합성한 것이었다.
피해자는 너무 많았다. 이씨는 "처음 친구가 알려준 링크 주소로 들어갔더니 아무리 뒤져도 제 사진이 안 나왔다"며 "이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만 1천 개가 넘었다"고 했다. "(직접 찾아보니) 지인능욕만 올리는 계정이 셀 수 없이 많다, 다 합치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을지 감이 안 올 정도"라고도 했다. 해당 사이트는 음란물 유통의 중심지였던 텀블러와 유사한 플랫폼, 텀벡스에 만들어졌고 현재는 접속이 불가능하다.
사진 밑에는 400개 넘는 댓글이 있었다. 이씨는 자꾸 오류가 나서 내용을 확인 못했지만, 짐작이 갔다. 그가 찾아본 다른 피해자들 게시물의 댓글은 대부분 '따먹고 싶다, 가슴이 어떻다'는 식이었다.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상세히 공개하고,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 '좌표'까지 찍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이씨의 경우 나이와 이름만 공개됐다. 안도를 하면서도 스스로 기막혔다. '이게 왜 다행이야, 정말 불행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