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성착취공대위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장내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권우성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디지털 성범죄 전반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당장 온라인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지인능욕'만 해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인능욕이란, 텀블러나 트위터 등에 일반인 여성 사진 또는 여성을 성적으로 합성한 사진을 신상정보와 함께 유포하는 것을 뜻한다. 2016년 6월 폐쇄된 불법사이트 '소라넷'에도 존재했고, 텀블러와 트위터 등에 수많은 게시물이 등장해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지인능욕을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두 개의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1일 오후 현재 이 청원에 공감한 이들은 약 11만 명에 달한다.
'지인능욕 및 사이버 성범죄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합니다'를 쓴 청원인은 "저도 불안함에 내 글이 있나 찾아봤지만 지인능욕 사이트가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중간에 포기했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실제 처벌은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열람 사이트에서 최근 2년간 지인능욕 관련 사건을 검색한 결과 6건을 확인했다.
"지인능욕 사이트 다 볼 수 없을 정도..." 실제 처벌은?
범죄 성격상 수법은 거의 똑같았다. 피고인들은 같은 학교 학생이거나 연인, 지인 관계인 피해자들의 사진을 다른 사진과 합성해 인터넷에 게시했다. 여기에는 해당 여성의 신상정보와 사생활, 성적 취향 등을 설명하는 내용이 따라붙었는데 대부분 허위사실이었다.
A씨는 2017년 경기도 안양시 자택에서 고교 동창 또는 대학 동기인 피해자 3명의 사진을 타인의 나체 사진과 합성한 뒤 '제보'라는 이름으로 가짜 정보를 덧붙였다. 그는 피해자의 나이와 학교, 소속 학과 등도 공개하며 "리플, 능욕 부탁합니다"고도 했다. B씨는 같은 학과 여학생들의 사진을 채팅어플 프로필로 꾸민 뒤 대화 상대방이 같은 학과인 경우 "야하게 놀래? 주변 사람들 능욕하면서?" "우리 과에서 제일 따먹고 싶은 애가 누구야"라며 합성사진을 배포했다.
<오마이뉴스>가 파악한 6개 사건의 피고인 6명에게는 모두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을 어기고 음란물을 유포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44조의 7). 같은 법상 명예훼손죄까지 들어간 경우도 있다. 해당 조항들에는 '지인능욕 = 성폭력' 개념이 없다. 또 이 조항들은 처벌 수위가 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천만 원에 그친다.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1심에서 A씨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해자들의 정신적 충격이 상당하지만, 초범이며 아직 나이 어린 학생이고 범행을 자백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이유다. B씨의 경우 같은 범죄로 집행유예 중인 상태에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지만,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그가 피해자 2명과 합의했다는 이유로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C씨는 드러난 피해자만 10명, 범죄 횟수는 71회에 달한다. 그러나 2017년 서울동부지법은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피고인이 초범이며 어머니의 선도 의지가 강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C씨는 항소심에서야 실형(징역 1년 6개월)에 처해졌다.
D씨는 2016~2017년 여자동창생 18명의 얼굴, 몸 등을 이용한 합성사진과 이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글을 63회에 걸쳐 트위터에 게시한 혐의로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는 일부 피해자의 실명과 페이스북 주소까지 공개했다. 하지만 1심 형량은 징역 10개월. 항소심 판단도 동일했다. E씨에겐 청소년 피해자가 있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래 아청법) 위반 혐의가 더해졌지만, 서울남부지법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가장 무거운 벌을 받은 F씨의 경우 그나마 처벌수위가 높은 아청법 위반 혐의가 추가로 있고, 불법촬영 전력이 더해져 1심(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이 나왔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2심에서 몇몇 합성사진의 경우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 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지난해 9월 그대로 확정됐다.
이제라도 법 개정됐지만...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