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공식 페이스북
훌륭한 의사에게 명약을 받고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 무슨 소용. 책을 통해 얻은 귀한 깨달음 또한 삶으로 옮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 결국 소송 계획을 철회하고 옷값만 환불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판매상을 향한 미움도 내려놓았다.
지난해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규정을 무시한 채 술담배에 고성방가를 즐기다 이를 지적당하자 허위신고를 해서 나를 괴롭힌 여행자들, 이웃이라 믿고 샀지만 고철에 가까운 중고 가전제품을 속여 판 또다른 판매상, 매번 자기집 쓰레기를 복도에 내두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웃에 대해서도 원망을 거두기로.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 (...) 나는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가지고 있는가? (...)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 스스로 그 암소와 작별해야 한다. 삶이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세상과의 불화가 나날이 늘어날 때 혹시 기쁨의 근원이 내 안에서 줄어든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한다. ... 삶에 대한 신뢰와 열정이 멈춘 것은 아닌가도.
그리고 모처럼 차분한 상태에서 나와 내 삶을 다시 생각했다. 진정 나이고 싶은 나.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하여. 그러자 몇 달에 걸쳐 타인과의 불화가 있기 전 이미 나와 내 삶이 삐걱거리고 있었음을 알았다. '늙은 염소'가 주는, 배고픔을 간신히 달랠 만큼의 우유와 치즈에 의지하며 그 익숙하고 작은 만족에 안주하면서 실은 그런 나 자신을 한심해하며 의심하고 있었던 것.
'한 가지 삶의 방식에만 매여 거기에 속박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 뿐, 사는 것은 아니다. (...) 자연은 우리를 자유롭고 속박되지 않는 존재로 이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특정한 지역에 가둬놓는다.'
앞서 찾은 책보석, 몽테뉴 수상록 선집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에서도 같은 깨침을 얻은 바 있다(관련기사 :
늙음, 이 낯선 손님과의 괜찮은 동거를 원한다면). 나는 여러 번 각성하여 스스로 달라질 것을 다짐하고도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하면서 날개를 펼쳐 나는 연습은 하지 않고 계속 땅만 보며 산 것과 같은. 땅에 쌓아둔 것들에 집착하면서.
의지 약한 자신을 데리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고귀한 수행
추구의 여정에는 두 가지 잘못밖에 없다. 하나는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8년 전 나름의 큰 용기와 벅찬 설렘으로 지금의 자리에 다다랐다. 그리고 더이상 가슴이 뛰지 않을 만큼 충분히 누렸다. 낯설음이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이 지루함이 되기까지. 이제 또다른 세상과 영감을 만나러 갈 때가 됐다. 그러려면 고맙고 정든, 하지만 나의 발길을 붙드는 '늙은 염소'와 작별을 해야 한다.
그 첫 시작으로 나의 집을 처분하기로 했다. 그러면 운영하던 게스트하우스도 잠정 휴업에 돌입하게 된다. 지난 8년간 재미와 보람에 원하는 삶을 산다는 특권에 비하면 절대 적다 할 수 없는 돈까지 벌게 해준 사랑스러운 직업. 하지만 지금으로선 공허한. 그리고 보증금을 마련하려 무리해 빌린 돈을 갚고 마지막 남는 얼마쯤의 돈이 여비가 될 거다.
그리고 이제부터의 여행은 시작보다 어디든 '끝까지' 가는 데 의미를 두고 최선을 다하기로. 나는 아직 한 번도 '끝까지' 가본 적이 없다. '이렇게 힘들고 외롭고 더이상 왜 떠돌아다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하고 돌아온 적이 여러 번이지만 결국에 그 모두는 최선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끝도 아니었으며.
새로운 여정이 어떻게 얼마 동안 계속될 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지금 이쯤에 멈춰서 죽음까지 지루한 삶을 살 생각이 전혀 없고, 그렇기에 어떤 질병이나 사고, 늙음이 나를 움직일 수 없게 하기 전에 어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계속해야 한다는 것. 자유롭게 기쁘게 끈기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