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시민군을 형상화한 ‘무장항쟁군상’
5.18 기념재단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5ㆍ18항쟁 3주기에 지은 「영원히 살아 있는 혼들에게」의 앞부분이다.
'상복'을 입은 광주의 5ㆍ18 유족이나 부상자, 수형자, 실직자, 제적된 학생, 실종자의 가족 등이 겪은 고통은 헤아리기 어렵다.
초기에는 계엄당국이, 얼마 뒤부터는 정보기관과 경찰의 뒷조사와 감시 등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집회나 결사는 물론 본인과 가족의 취업이 제한되거나 저지되기 일쑤였다. 항쟁기간은 계엄당국의 보도 통제라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이후에는 길들여진 습성 때문이었는지 언제까지나 5ㆍ18은 '폭도들의 폭거'로 지탄되었다.
전두환은 최규하의 '잔여임기 대통령'이 못마땅했고, 처음부터의 야심대로 헌법을 고쳐 1980년 2월 26일 선거인단이라는 간접선거에서 90.23%의 득표로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위컴의 말대로였을까, '90.23%의 들쥐들'이 모여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로써 한국사회는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난형난제를 이루는 전두환의 5공체제가 열리고, 광주는 탄압과 소외와 망각의 고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