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2017.5.12
연합뉴스
2017년 5월 10일 선서를 마친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강조하며 외쳤다.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에 빼앗겼던 대통령직이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국민들이 촛불로 불의한 정권을 탄핵하고 대통령직을 탈환한 것이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누구보다도 노동자들에게 매우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대통령은 취임 당일 제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고, 이틀 뒤 대표적인 비정규직 오·남용 기관으로 악명 높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하여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국민통합을 희구하는 국민들 가운데 촛불 정부 촛불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최저임금 1만 원,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자들이 염원했던 요구들을 대선공약으로 천명하며 국민들과 약속했다.
노동정책은 더 이상 경제정책의 함수가 아니라 노동기본권 보장과 노동시장 유연성 과잉 등 노동문제 자체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립되었다. 해방 후 최초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정부를 갖게 된 것이다. 이는 이윤주도성장전략을 폐기하고 소득주도성장전략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촛불항쟁으로 수립된 촛불정부는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지향했고, 그런 점에서 취임사에서 밝힌 바처럼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믿었다.
임기 반환점을 지나는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민 통합'도, '촛불 정부'도, '소득주도성장전략'도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여성, 청년 등 노동시장 취약집단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걸었던 기대를 거두어들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정책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하며 출범했고, 약속한 노동정책을 이행하는 듯 했지만, U-턴 하며 촛불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회사 방식'으로 빛바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먼저, 비정규직 정책의 경우 문재인 후보는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차별금지법 제정 등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약속했지만 하나도 이행되지 않았다. 국회 의석 분포의 제약 탓에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민간부문의 변화를 견인하고자 했다.
문재인 정부는 정규직 전환 대상을 기간제에 한정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한편, 실제 전환정책 2년 동안 총 18만 5천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이 가운데 15만 7천 명을 전환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규직 전환 규모에 맞먹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임 정부들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자회사 상용직이 또다른 형태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인데도 정규직 전환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던 인천공항도 상시적 업무 담당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직접고용으로 전환한 비율은 30%에 불과한 반면, 나머지 70%는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되며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의 경우 기존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과 동등처우하도록 하며 기존 정규직과는 임금체계 및 승진체계를 통합하지 않고 별도의 인사관리체계로 관리하도록 했다. 결국 동일·유사 직무 수행 노동자들이더라도 기존 정규직,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에 따라 임금 등 노동조건에서 차별처우 하도록 했다.
결국 전임 정부들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부터 방기하게 되었다.
한편 전환 정규직들에 적용되는 표준임금체계는 공공기관 간 격차와 동일 기관 내 격차를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전환 정규직들의 임금 수준을 기존 정규직이나 민간부문 동일 직군 노동자들에 비해 아주 낮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하향평준화하도록 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어 추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부분적으로는 전임 정부들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모범 사용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견인한다는 당초 취지에는 크게 못 미쳤다.
최저임금 인상, 줬다 뺏기
최저임금 정책의 경우, 문재인 후보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지만, 2020년 최저임금은 산입범위가 확대되었음에도 8590원으로 인상되는데 그쳤다.
최저임금은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은 16.4% 인상하여 7530원, 2019년은 10.9% 인상하여 8350원으로 확정되었다. 이처럼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지만, 2018년 5월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과 후생복지비를 포함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크게 상쇄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2019년 들어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구간설정 위원회와 결정 위원회로 이원화하고 경제·고용 지표들을 포함하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 재편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에 반발하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을 전원 교체해 경영계의 환호를 받았다. 결국 교체된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영계의 의견을 대폭 수용하여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2.9%로 억제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함께 소득주도성장전략의 핵심을 구성한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해방 이후 경제정책을 지배해온 이윤주도성장전략을 대체하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마스터플랜과 함께 체계적 준비와 단호한 집행이 요구되었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중소영세기업의 인건비 부담 경감을 위한 정책들이었다. 한국은 여타 OECD 국가들에 비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이윤율이 월등히 낮다는 점에서 중소기업 이윤율을 제고하기 위해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바로잡고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지원과 개발 기술의 보호를 위한 경제·산업정책들을 수립·집행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제부처들과 경영계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저임금 노동자와 중소영세자영업자 사이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프레임화했고,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포기하게 되었다. 중소영세기업의 낮은 이윤율로 인한 인건비 부담 가중 현상은 대기업 패권 하의 불공정 거래질서, 경제관료들의 무능과 경제정책의 실패에 원인이 있는데도 최저임금 인상 정책 탓으로 호도되었고, 결국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최저임금 인상 공약과 함께 실질적으로 폐기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탄력근로시간제로 무력화되는 노동시간 단축 시도
한편, 노동시간 정책의 경우 문재인 후보는 임기 내 1800시간대 노동시간을 실현하기 위해 주52시간 상한제 전면 시행 등을 약속했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을 바로잡기 위해 주 52시간 상한제를 명문화하며 실노동시간 감축을 시도했지만, 곧이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노동시간 단축 노력을 무력화하는 조치들을 추진하고 있다.
주52시간 상한제의 2018년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경총이 6월 19일 고용노동부에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요구하자, 다음날 고위당정청회의에서 6개월 계도기간과 처벌유예를 결정했다. 뒤이어 김동연 부총리,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자본 측과 간담회를 갖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고, 2018년 11월에는 마침내 이낙연 총리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문제를 연말까지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영계와 정부측 입장을 받아들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는 금년 2월 19일 한국노총-경총(이하 노·경총)의 합의로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경사노위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노·경총 합의문은 탄력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한편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하되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합의문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노조 미조직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주52시간 상한제를 통한 장시간 노동자들의 실노동시간 단축 시도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취약집단 배제하는 사회적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