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식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EPA=연합
한날 한시 용서를 빈 독일 총리와 대통령
"영시!(零時, Stunde Null)"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상황을 표시하는 단어다. 국가지도자도, 먹을거리도, 학교 교재도 없는 그야말로 '영시'였다. 미국 등 전승국들이 나치 처벌에 앞장섰고, 건국 이후 독일 역시 나치즘을 청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치에 부역한 인물에 대해 조사와 처벌이 현재 진행형이다.
2006년 독일 뮌헨재판소는 나치 장교였던 91살 조세프 쉔그라바에게 최고형인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44년 이탈리아에 파견돼 무고한 시민 14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는 칠레로 도망간 전범을 찾아 독일로 압송해 처벌하기도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30주년이자 600만 명이 희생된 유태인 학살의 신호탄을 쏴 올린 '깨진 유리의 밤'(Crystal Nacht) 기념일 80주년이 되는 지난 11월 9일에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다시 한번 나치의 만행에 대해 각각 다른 장소에서 거듭 용서를 구했다.
먼저 메르켈 총리는 이날 '동독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식'에서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치, 인권 등 유럽의 가치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나치가 다시 독일 땅에 기승을 부리면서 극우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같은 날 독일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유태인보다 더 많은 800만 명이 희생된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폴란드 침략 80주년 행사에 참석해 나치의 만행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폴란드 비엘룬은 나치 독일이 1939년 9월 1일 기습적으로 공습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수만 명이 숨졌고, 이어 5년간 폴란드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800만 명 가까이 희생됐다.
과거 반성 토대로 국가 대통합 나선 빌리 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