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굳은 표정'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 신임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판단에서 그 '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란 무엇이기에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가장 친밀했던 사람을 위협적으로 느껴야할까. 그저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에서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해야 할까.
이런 상황은 비단 커밍아웃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커플은 함께 사는 집을 구하는데 동년배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애를 먹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동성커플이고 서로를 얼마나 깊게 사랑한다 해도 부부관계를 인정받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애 커플이 결혼을 하고 신혼부부가 되어 전세자금대출 지원을 신청하거나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보는 동안 내 친구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은행을 돌며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대출이 얼마정도인지를 알아보는 것 뿐이었다.
즉, 불평등은 결국 삶의 문제로 연결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기회와 미래도 누군가는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을 통해 얻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성소수자의 경우 자력구제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불안정성이 생의 주기 곳곳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소외되거나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은 교육의 불평등 문제로 이어지고, 특히나 한국에서 이는 노동과 사회참여에서의 어려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겨우 독립의 여건을 마련한다고 해도 성소수자에게 비친화적이거나 혐오가 만연한 직장문화는 또 다시 성소수자 개인의 가능성을 가로 막거나 아예 일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즉, 끊임없이 대비하고, 숨기고, 노력하고, 그래서 포기하는 것이 많은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박해와 차별 아니면 무엇인가
사실 이 글의 목적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행보를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위해 글을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러기엔 이 정부가 일은 커녕 입바른 소리라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그 전 대선에서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쏙 빼버리고 대신 보수 개신교계 인사를 만났다. 정부 출범 이후에도 100대 국정과제에서는 역시나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빠져있었다. 심지어 지난해(2018년)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제3차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의 '사회적 약자' 분류에는 그 전 정부에서도 포함되어 있던 '성소수자' 항목이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가 전달한 권고 중 성소수자와 관련한 권고는 그 무엇도 채택하지 않았다. 이 권고들에는 육군 내 동성애자 병사 색출 사건으로 문제가 되었던 군형법 92조의6 폐지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지난 9월 제 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본심의에서 교육부는 성교육에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킬 계획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간단히 요약한 것만으로도 이 정도다.
한편으로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 외교사절단 초청 만찬 행사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 필립 터너 뉴질랜드 대사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참석하고 대통령과 접견을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의식한 듯 종교 지도자들과의 오찬에서 '성소수자 인권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동성혼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다만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박해받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