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황교안 대표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남소연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정권 출범 때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입만 열면 평등과 정의를 외치지만 소득 불평등이 최악에 이르렀다고 성토했다. 성북구 네 모녀 죽음에 관해서도 어찌 이런 것들이 우연이겠냐, 민생 파탄의 시작일 뿐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사회주의 정책을 덮어씌우려는 정부의 참담한 경제성적표라 했고, 김광림 최고위원은 소득주도성장이 잘못된 정책임을 인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이 바라보는 경제 현상은 동의되지만 진단은 틀렸다. 소득불평등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최악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최악이었다. 성북구 네 모녀의 죽음이 민생 파탄의 한 단면이기는 하지만, 이 원인이 사회주의 정책이나 소득주도 성장 때문이라는 건 얼토당토않은 궤변이 가깝다. 누가 뭐래도 민생이 파탄나고 소득불평등이 최고조에 이른 건 과거 정부의 대기업 중심 수출주도 성장과 빚 내서 집 사라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후과와 무관치 않다.
또 소득주도성장에 사사건건 발목 잡은 건 자유한국당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편의점주와 알바생 간의 '을'들의 싸움으로 몰아갔던 것도 자유한국당이었다.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통계를 두고 비정규직 개미지옥이 됐다며 날을 세웠던 황교안 대표. 그러나 정규직화 정책을 '세금 퍼붓기'라고 가로막아섰던 것 또한 자유한국당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좋은 점수를 얻기 힘들다. 일차적인 책임은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져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워 경제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만 해왔던 책임도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회초리를 맞아야 할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과거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바꾸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왜 안 지켰냐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재벌 개혁을 완수해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사리지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해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또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 경제, 혁신성장의 3대 경제정책을 안착시켜 경제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고 수차례 약속했다. 그러나 임기의 절반이 넘어선 지금, 국민의 호주머니를 먼저 채우겠다는 약속. 흔들리지 않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야당 탓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언론의 보도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하소연도 할 수 있다. 중국과의 갈등, 일본과의 무역 마찰, 미국의 압력 등 세계적인 불황과 보호 무역의 파고가 너무 높다는 변명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 때문에 과거 정부처럼 대기업을 살리고 보자고, 수출을 우선하자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들이 진정 우려하는 것은 값싼 노동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과거 정권의 경제정책으로 회귀다.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스스로 폐기해버린 문재인 정부의 줏대 없는 경제정책.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더딘 걸음에 채찍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