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근처계곡 불곡산 등산로 옆 계곡. 비가 내리기 전 평소 모습이다
강대호
등산로 입구에서 100미터만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다. 물은 그쪽에서 흘러왔다. 평소에는 약수터에서 내려오는 물이 도랑처럼 흘렀겠지만, 큰비 내린 뒤라서 계곡이 된 모양이었다. 집 바로 앞에 산이 있어서 좋았는데 계곡까지 있다니 이삿날 비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싹 날아갔다.
이처럼 산 바로 아래에 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전에는 경험하지 못해본 일들이 여럿 생겼다.
9월 어느 주말 오후에 차 유리창에 어떤 종이가 놓여있었다. "강풍 피해가 예상되는 태풍이 올라오고 있으니 산 근처에 주차한 차를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라"는 주민센터의 안내문이었다.
"공용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하고 대로변에 주차해도 단속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는 차들이 많이 보이질 않았다. 그제야 산 바로 아래니까 강풍이 불면 나무가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차부터 옮겨야 했다.
하지만 공용주차장 입구는 들어가지 못한 차들로 북적였고 대로변에도 세워둔 차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몇 바퀴 돌다가 그냥 집 근처에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곳에다 차를 세웠다.
옥상에서 바라본 산은 나무들이 추는 춤으로 들썩였다. 나무들은 바람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푹 숙였고 나뭇가지들은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바람 소리와 나무들이 부닥치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 창문도 밤새 흔들렸고 부러진 잔가지들이 날아와서 창문을 때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깨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바람이 잦아진 이튿날 아침 밖으로 나가보니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길에 즐비했다. 다행히 우리 차는 무사했다. 나뭇가지가 차 위에 떨어졌으나 약간 긁힌 정도였다. 산 쪽을 올려다보니 부러진 나무들이 보였다. 마을버스 정류장 옆 가로수에서 제법 큰 나뭇가지가 부러져 그 아래에 있던 차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나는 산 밑에서 살면 자연의 민낯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진 일도 겪었다.
한밤중 그 '따그닥 따그닥' 소리
10월 어느 밤 무슨 소리를 들었다. 뭔가 딱딱한 밑창을 신고 뛰는 소리였다. 분명 '따그닥 따그닥'에 가까운 소리였다. 난 설마 했다.
이튿날 아침 동네 곳곳에는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멧돼지가 출몰했으니 조심하라고 파출소에서 붙인 거였다. 세상에. 전날 밤에 들었던 소리가 멧돼지였었나 보다. 그 전단을 보던 주민들도 믿기지 않는단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