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김경숙 열사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이에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지난 10월 30일,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 심포지움을 열어 한국사회의 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여성노동자들의 빛난 투쟁을 재조명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지난 10월 30일 수요일, 김경숙 열사 40주기를 맞아 지난 역사를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김경숙 열사를 비롯한 YH무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오늘날을 이끈 역사로 조명하지만, 당시로선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일이었다.
YH무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살아갈 기반을 하루아침에 잃은 이의 정당한 요구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 어제의 일자리는 오늘이라는 미래를 여는 문이었으니 그 문이 닫힌 정당한 이유를 물어야했다. 가발을 뜨는 것도 살아가는 일, 닫힌 문을 두드리는 일도 살기 위한 일, 노동자는 그렇게 제 노동의 길을 여는 것 외에는 다른 줄이 없다.
하지만, 당시 유신체제의 억압적 방식은 노동자들과 민주주의를 누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저항하며 팽창하는 공기를 힘으로만 누르면 언젠가는 터지고 만다. YH무역 노동자들의 농성 투쟁이 이후 부마항쟁, 10.26 사태로 이어지며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는 도화선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만큼의 이야기로도 우리나라 경제사, 한국 민주주의사, 노동운동사에는 여러 페이지가 장식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자립해 서 있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목소리를 내고 투쟁한 역사로서도, 지금으로선 빈약하다 평가되는 여성 중심의 노동운동사에 대한 접근면에서도, 다양한 수사를 붙일 만하다.
어떤 식으로든 지나온 역사는 이야기 되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살고 가능한 더 나은 내일을 여는 길이다. 이전엔 없던 역사였으므로, 그것이 곧 역사의 시작이 될지도 몰랐을 YH무역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내일을 열었고 40년이 흘렀다.
물론, 오늘이 '가능한 더 나은' 내일인지는 여전히 토론 거리다. 동시에, 누군가는 탁상에서 그 의미를 쓰고 있겠고, 또 어느 22살, 어느 32살, 어느 42살의 세상의 김경숙들은 씨름하고 있을 현장의 지점일지도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는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래야 여공들의 가발공장도, 어머니의 70년대도 나의 역사, 너와 나의 역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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