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김경숙 열사기념사업회가 김경숙 열사 40주기를 맞아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정대희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된 김경숙 열사를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더불어 여성 노동자를 '여공'과 '꽃송이', '아가씨'로 묘사됐던 과거와 달리 '자부심'과 '책임감', '저항'의 상징으로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30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김경숙 열사 40주기를 맞아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 날 행사에서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019년 YH무역 여성노동자 김경숙을 다시 생각하다'는 주제로 발제문을 발표했다. 그는 "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 서린 처녀의 삶을 끝낸'...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김경숙 죽음 평가
이날 신 교수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노동 주체로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기회와 자원을 평생 누릴 수 있고, 이러한 권리와 책임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가혹한 노동 억압을 토대로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한 박정희 정부 산업화 시대를 종식한 정치적 저항운동의 맥락에서, YH 무역 여성노동자의 투쟁과 김경숙 열사의 실천을 다시 조명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경숙 열사는 지난 1979년 박정희 유신정권 때 'YH 무역'의 부당한 회사 폐업 조치에 항의하다가, 경찰의 강제 진압과정에서 추락사한 노동자다. 이 사건은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이후 10.26 사건으로 결국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관련 기사:
박정희 몰락의 도화선, 김경숙 사망사건) 당시 김경숙 열사의 죽음은 '투신자살'이 원인인 것으로 보도됐으나, 뒤늦게 진실이 드러났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가 국가 권력이 김경숙 열사의 사망 경위를 은폐했다고 밝힌 것이다.
신 교수는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을 바라보는 남성연구자들의 시선이 '연민'에 가깝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남성연구자들의 서술에 대해 "어린 나이에 취업해 공장 생활에서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다가 일으킨 강렬한 저항, 많이 배우지 못하고 자본에 맞설 기술도 없었던 어린 여성들의 '일시적 집단행동'으로 표현한다"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런 70년대 어리고 가여운 여성노동자의 이미지는 '전태일의 신화'에서도 나타난다"라고 설명하며 "김경숙 열사의 삶과 죽음에 내포된 시대적 의미도 1979년 2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점에 '박제화'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YH노동조합사(1984년)' 책 첫 부분에 실린 두 편의 글은 남성 지식인이 가진 여성노동자에 대한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라며 "고은 시인은 YH 여성노동자들을 '민족의 해당화'로, 김경숙을 '한 서린 처녀의 삶을 끝낸', '민족의 꽃송이'로 불렀다"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런 안타까운 해석은 20세기로 끝나지 않는다"라며 2016년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의 오픈아카이브에 수록된 김경숙 관련 자료를 지적했다. 이 자료에선 동일방직과 YH 무역 여성들의 노동운동에 대해 "가녀린 여공들을 짓밟았던 유신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술 시중을 들던 젊은 모델과 여가수의 품에서 독재자가 쓰러짐으로써 종말을 맞았다"라고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