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양동 시장 상인들이 시민군들을 위한 밥을 짓고 있다.양동시장은 5·18 민중항쟁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어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5.18 기념재단
광주 시민들의 투쟁이 무익한 투쟁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시내 도처에서 시산형해를 이루고, 중앙의 학살 지령자들과 현지의 하수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차분하게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5월 23일, 여섯째 날은 '해방 연력(年歷)'으로 치면 해방 2일째가 된다. 첫날에 비해 이날은 여러 면에서 질서가 잡혀가고 있었다. 역시 가장 큰 과제는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문제였다.
인구 80만 명의 작은 도시에서 갑자기 많은 부상자(대부분 중상자)가 밀려들다보니 치료할 의사와 의약품, 혈액이 크게 부족했다. 외지의 지원은 철저히 통제된 관계로 기대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