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즉위 선언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지난 22일 오후 1시18분께 도쿄 왕궁의 정전(正殿)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자신의 즉위를 선언하고 있다. 나루히토 일왕은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 및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일왕의 즉위식 선언은 상당한 비중을 가진 메시지로 국내외에 보도된다. 지난 22일 즉위식을 올린 나루히토 일왕의 메시지는 아래와 같았다.
"여기에,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게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원문) "ここに,國民の幸せと世界の平和を常に願い,國民に寄り添いながら,憲法にのっとり,日本国及び日本國民統合の象徵としてのつとめを果たすことを誓います。"]
- 나루히토 일왕 즉위 메시지('19.10.22.), 출처: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무난한 표현의 사용, 이슈가 될만한 지점이 없는 평화의 메시지.' - 한국 언론은 대체로 이런 시각에서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좀 더 분석적인 보도라고 해도, 일왕의 메시지에 포함된 '헌법'과 '평화'의 가치에 중점을 둔 보도를 하는 정도였다.
22일 몇몇 한국 언론은, '나루히토 일왕이 헌법을 수호하고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였으며 이는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와 전쟁 가능국으로의 개헌 의지에 제동을 걸만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긍정 평가했다. 그중에는 '일왕이 즉위식 선언을 통해 아베를 견제했다' '아베의 개헌 의지와 극명히 대비됐다'면서 나루히토 일왕의 평화의지를 추켜세우는 듯한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보도와는 달리, 실제 나루히토 일왕의 선언 원문(궁내청)을 살펴보면, 눈을 씻고 찾아봐도 '헌법 수호· 준수'에 대한 문구가 없다. 마찬가지로 현행 일본 헌법에 내포된 평화의지를 재천명하거나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나타난 부분도 찾을 수 없다.
확대해석
나루히토 일왕은 그저 "헌법에 따라(憲法にのっとり)" 임무를 다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헌법에 따라', 혹은 '헌법에 의거'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니 그것만으로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나타난 것이라고 하지만, 앞뒤 문장을 읽어보시라. 해석 측면에서 볼 때 이 문장은 '헌법에 명시된 일왕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겠다'는 의미이지,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미로는 볼 수 없다.
즉, 대단히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헌법 준수를 표현한 것으로 아베 총리의 개헌 의지에 맞서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헌법 수호와는 거리가 멀다.
만약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겠다는 의미가 들어간 표현을 하려면 최소한 '지키겠다'는 의미나 현행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표현이 직접 들어갔어야 마땅하다. 일례로 나루히토 일왕의 아버지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의 즉위식에서 현행 일본국 헌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현했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일본국 헌법을 지키고, 이에 따라 책임을 완수할 것을 맹세..."
[(원문) "皆さんとともに日本國憲法を守り,これに從って責務を果たすことを誓い..."]
- 아키히토 일왕 즉위 메시지(1990.1.9.), 출처: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아키히토 일왕의 언급에는 ▲국민과 함께, 일본국 ▲헌법을 지키고, 이에 따라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의지와 표현이 명확히 들어갔다. 적어도 이 정도의 명확한 표현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문장을 의역하든, 의미를 도출해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일부 언론은 나루히토 일왕과 아베 총리의 '반대적 이미지' 구축에 급급한 나머지 의역의 수준을 지나 확대해석 수준까지 이른 듯하다.
나루히토는 친한파에 평화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