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카와 요헤이 블로그(효순이,미선이 사진과 위안부 동상의 생김새를 악의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최우현
극도의 망언이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과 연결시켜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한국 국민이 매우 슬퍼했던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을 평화의 소녀상 설치라는 또 다른 주제와 연결해,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감정적이고 우발적인 현상으로 왜곡하려는 듯하다.
더욱이 사사카와 요헤이는 그와 관련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불행히도 진위는 알 수 없다"며 무책임한 발언까지 하고 있다. 또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 중 10대 소녀들이 있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보도가 넘쳐나는 상황까지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사카와 요헤이는 최근 <산케이 신문> 기고 등을 통해 "한국인은 만일 틀린 것이 있어도 명백한 증거가 아니면 스스로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한다면서 한국이 "고자질 외교"를 통해 일본 비판을 전개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사사카와 요헤이라는 인물의 발언은 상당히 격하고 감정적이다(
관련 링크).
독도에 대한 일방적 주장 펼치는 사사카와 평화재단
일본재단의 어두운 면은 더 있다. 바로 '사사카와 평화재단'이다. 이 재단은 1986년 일본재단 및 모터보트계(界)* 기부금을 통해 설립됐다. 설립자 사사카와 가문의 이름을 따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재단 그룹에 속해 있으며 일종의 '계열사'라고도 볼 수 있다. 본 사사카와 평화재단의 명예회장은 앞서 언급한 사사카와 요헤이 일본재단 회장이다. (*일본재단이 그 연혁에서 밝힌 것처럼, 일본재단은 모터보트 경정사업의 수익으로 성장했으며 사사카와 료이치는 1952년 '전국모터보트경주회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사실상 모터보트계를 장악해 왔다)
2018년 대차대조표에 따르면 사사카와 평화재단의 자산은 1400억 엔 수준에 달한다. 이들은 조직 목표로 국제이해, 국제교류, 국제협력을 통해 인류 복지와 건전한 국제 사회 발전에 기여, 세계 평화에 기여 등을 표방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표면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들이 지원하는 사업 속에 녹아 있는 우익적 편향성과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움직임이다.
각종 사회공헌, 봉사, 기부에 초점을 둔 일본재단과는 달리 사사카와 평화재단은 그 움직임이 상당히 정치적이고 또 자유롭다. 이들은 안보 연구, 지역 연구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국제 현안을 다루고 강연회나 세미나 등을 활발히 개최하는데, 한일 관계와 관련한 민감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영토와 관련된 부분, 즉 독도와 관련된 왜곡된 학술활동과 대외 홍보 추진이다. 사사카와 재단이 운영하는 별도의 자료센터도 있을 정도인데, 이 자료센터에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주장이 올라와 있다.
▲사사카와 평화재단 독도관련 라이브러리
최우현
특히 <竹島 Facts & Figures>라는 별도의 정보 라이브러리를 개설,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영유권(법과 역사), 지리, 독도의 해양과 기상, 생태계, 산업, 환경 등에 관한 상당히 꼼꼼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나열해 놓고 있다.
물론 이는 일본 측의 일방적 주장이다. 이에 더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연구저널까지 간행하고 있어 일본 우익단체의 단순한 주장으로 넘기기에는 그 규모가 심상치 않다(
관련 링크).
어렵지만 감시가 필요하다
사사카와 재단 외에도 일본재단과 연관을 맺고 있는 조직은 많고 그 관계는 복잡하다. 필자의 조사를 통해서도 일본재단의 실체를 깊이까지 파헤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 사업을 정당화하고 합리적으로 잘 포장하고 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일본재단 홈페이지만을 둘러봐서는 그들의 부정적인 측면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일본재단으로부터 조성되어 한국에 들어온 자금 '모두가' 역사 수정주의에 이용된다고도 볼 수 없다. 한센병 환자를 돕는 사업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업을 목적으로 조성된 기금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부분까지 그냥 모른 척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편적인 조사를 통해서도 그들의 우익적 방향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
류석춘 교수 사태로 불거진 아시아연구기금에 대한 비판은 일본재단의 실체를 좀 더 뚜렷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 배후의 실체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해야 한다. 과거 일본 도요타 재단이 뉴라이트계 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한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일본 우익계 자금이 학술계로 유입되는 현황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조사해야 한다.
일본재단의 설립자 사사카와 료이치는 |
일본재단의 설립자 사사카와 료이치는 1899년 출생, 1930년대 침략전쟁 당시 일본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파시즘,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국수대중당' 결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왕 숭배, 일제의 침략전쟁(중국, 만주, 몽골 진출 등)을 지지하며 주목을 받았으며 전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됐으나 이후 불기소, 석방됐다.
료이치는 석방 후에도 일본 정계에서 전범들을 지원하고 반공 활동에 매진하며 일본 우익의 실력자로서 그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사사카와 료이치는 당시 정부가 관리하던 공영 경기였던 경정(보트 경주)의 사업권을 따내 그 수익금으로 일본선박진흥회라는 재단법인을 창설했다. 이것이 바로 현 '일본재단'의 전신이다.
일본재단의 현 회장인 사사카와 요헤이는 자신의 아버지 료이치가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긴 하지만 죄가 없음이 인정되어 석방을 받았음을 강조했다. 더불어 일본재단이 꾸준히 한국에 대한 기부를 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2005.6.3. 사사가와 요헤이 블로그).
그러나 사사카와 료이치의 과오가 전혀 없다는 논리로는 볼 수는 없다. 사사카와 료이치의 석방은 전쟁 당시 수상이자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와 대립하는 입장에 섰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인정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일본 내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한다는 목적에서 연합군에 협력적인 전범이 활용됐던 당시 상황들도 운으로 작용했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침략전쟁시기 전시 군수동원에 일조한 것으로 A급 전범 용의자가 된 기시 노부스케조차 죄가 없는 무결한 사람이 된다.(기시 노부스케는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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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200억 지원한 일본재단, 활동 내역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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