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유명 식당의 티본 스테이크 맛은 좋았으나 좀 비쌌다. 그리고 개인 취향 차이겠지만 나에게는 식당 안이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박기철
그러다 인터넷에서 유명하다는 또 다른 식당을 갔다. 역시나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도저히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과감히 포기하고 근처 다른 식당으로 갔다.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곳이었는데 꽤 한적했다.
그렇다고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손님들이 적당히 있었지만 조용하고 여유가 넘쳤다. 식당 사장님과 종업원들의 서빙도 매우 친절하고 세심했다. 메뉴 역시 원래 가려던 유명 식당과 비슷했고 기분 탓인지 맛도 훌륭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곳은 대를 이어 가족들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고 사장님도 손님들과 안면이 있는 듯 편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우리 테이블에도 와서 인사를 건넸고 하우스 와인까지 서비스로 주었다. 나는 비로소 여행 전 꿈꾸던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유명 맛집의 옆집을 가세요
나는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식당을 추천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나와 취향이 다른 것일 뿐일까? 오랜 고민 끝에 나는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그 가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렌체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실패'한 여행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행이란 시간과 돈을 들여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다녀온 이들의 경험을 참고한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A라는 사람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처음 방문한다. 그리고 어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인터넷에 긍정적인 후기를 남긴다. 얼마 후 B라는 사람도 이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먼저 다녀온 A의 후기를 보고 같은 식당을 방문한다. 그리고 나름 맛있는 집이라고 후기를 남긴다.
다시 B가 남긴 후기를 보고 계속해서 C와 D가 여행 중 이 식당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다소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힘들게 온 여행이 실패해서는 안 되기에 훌륭한 식사였다고 후기를 남긴다. 게다가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촉박한 일정 때문에 여러 식당을 경험해 볼 여유가 없다. 이렇게 그 식당은 맛집으로 여행자들에게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여행자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게 된 그 식당은 이제 더 이상 처음과 같은 분위기와 여유를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말한 명동의 설렁탕집처럼 현지인들은 찾지 않는 여행자들만의 맛집이 되어 버린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가정이고 모든 식당이 이런 식으로 소문난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시끌벅적한 것이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이후 주변 지인들이 피렌체 맛집을 알려달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에 소개된 유명 식당의 옆집을 가세요. 그럼 비슷한 메뉴와 맛에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여유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P.S 이탈리아에서 좋은 식사를 위한 참고사항
이탈리아에서는 식당 입구에 리스토란테(ristorante)나 트라토리아(trattoria), 오스테리아(Osteria)라고 적혀 있는 곳들이 있다. 리스토란테는 흔히 얘기하는 레스토랑으로 가장 격식이 높은 고급 식당인데, 규모가 크고 가격 역시 비싼 편이다.
트라토리아는 리스토란테보다는 규모가 작고 골목 어귀에 위치한 좀 더 캐주얼한 식당이다. 오스테리아는 트라토리아보다도 낮은 등급으로 한국으로 치면 백반집이나 분식집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외에 타볼라 칼다(Tavola Calda, Hot Table이라는 뜻)와 로스티체리아(Rosticcheria)도 있는데, 주로 간단한 음식을 테이크 아웃용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주의할 점은 이런 식당의 등급은 음식의 맛과 질이 아니라 격식이나 분위기로 나눈 것일 뿐이기 때문에 높은 등급의 식당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트라토리아나 오스테리아는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가족들이 경영하면서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잘만 고른다면 싼 가격에 아주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앞서 내가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고 언급했던 식당 역시 트라토리아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는 팁(Tip) 문화가 없다. 나도 잘 몰랐던 때는 그 놈의 체면 때문인지 나갈 때 식탁 위에다 몇 유로 정도 팁을 올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 중 들른 식당에서 종업원이 팁을 요구한다면 대부분 두 가지 경우이다. 그 식당이 매우 고급 레스토랑이거나,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여행자들에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종업원의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