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럼짜고 드러누운 자유한국당지난 4월 26일 오후 패스트트랙 저지에 나선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본청 사개특위 회의장 앞에서 스크럼을 짜고 바닥에 두러누워 "헌법수호" 등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유성호
# 몸빵(하다)
: 정의(명사) '어떤 일에 대하여 몸으로 때우는 일. 또는 그런 사람'
: 쓰임(용례) '한국당의 몸빵 항의…文(문)의장 난장판 국회 뒷목' (<노컷뉴스> 4.24일 치 기사 중)
'몸 개그'라는 말이 있다. 콘텐츠는 부실한데 과장된 몸동작으로 억지웃음을 유발하려는 수준 낮은 개그를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실상 알고 보면 '몸 개그'는 매우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코미디의 한 종류라고 한다.
그런데 몸 '개그'와 풍자 '코미디'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누구도 다치지 않는' 웃음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유를 막론하고 사람이 다친다면 '웃음의 상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철학과 콘텐츠가 부재한 정치투쟁 또한 결과적으로 '정치 실종'과 '정치 무관심'을 초래한다. 한국 정치권에도 수준 이하의 '몸 개그' 혹은 '몸빵'의 달인들이 어느새 대세를 이루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 선두와 중심에 황교안 대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황교안 대표 취임 200여 일이 지났다. 한국당과 황 대표의 결정적인 '정치적 명장면'을 떠올려보니 3가지 정도가 강렬하게 떠오른다.
나경원 원내대표 주도의 패스트트랙 '동물국회'. 그리고 걸핏하면 국회를 비우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장외투쟁'. 마지막으로 급기야 전기 바리캉(bariquand)을 무기로 시작된 '삭발정국'. 대한민국 헌정사상 몸빵정치 첫 그랜드슬램이 아닐까.
각 장면마다 주연 배우가 조금씩 다른 것 빼고는 공통점이 많다. 툭 하면 국회를 비운다는 것, 막말과 욕설이 난무한다는 것, 가끔 법도 무시한다는 것, 관객들의 여론조사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 국민의 쓴웃음을 실력이라고 착각한다는 것, 그리고 항상 결정적 장면에서 NG(말실수)가 난다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신분으로서 정책토론과 법안제정에는 큰 관심이 없고, 오직 '몸'으로 때우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속사가 한 곳이니 배우들의 태생적 한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몸빵만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이 부담스러웠을까? 황교안 대표는 지난 6월 6일, 취임 100일을 맞아 작심한 듯 중대발표를 단행했다. 현 정부의 경제실패와 민생파탄을 책임지는 대안정책정당으로 거듭나 국민 앞에 진면목을 보이겠다는 일성이었다. 그리고 '자유한국당 2020 경제대전환위원회'를 특별기구로 출범시켰다. 황 대표는 '우리 당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단일프로젝트'라며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현역 국회의원과 각계 전문가 77인이 참여하고 ▲총괄비전 2020 ▲활기찬 시장경제 ▲공정한 시장경제 ▲따뜻한 시장경제 ▲상생하는 노사관계 5개 정책 영역을 나눈 것으로 봐서는 전문성에 상당히 공을 들이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리고 100일 뒤인 9월 2일, 이 야심찬 '대안정책정당 프로젝트'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에 공식 보고하고 국민에게 발표하겠다는 로드맵까지 제시한 바 있다. 상당히 자신있어 보이는 대목이었다.
놀랍게도 대한민국 국민 혹은 언론 어느 누구도 '당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정책프로젝트'의 내용과 결과에 대해서 일언반구 들은 이가 없다. 대신 약속했던 9월 2일엔 최고위원회가 아닌 의원총회가 열렸다. 그리고 정책발표 대신 여야간 합의한 인사청문회 보이콧에 관한 견해를 발표했다. 한국당표 경제정책은 고사하고 모든 국민이 기다리며 최소한의 '국민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국회 인사청문회마저 파행시키고야 만 것이다.
어찌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국회보이콧이 사실상 상시적 당론이었고, 초지일관 몸으로 때우는 정치를 했으니 기대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1야당의 대표와 원내대표가 국민 앞에 스스로 나서서 약속하고 큰 소리 친 일이니,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긴 했다. 돌아보면 부질없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한국당은 오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2020 경제대전환 - 민부론'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란다.)
몸빵정치의 끝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