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본제국 해군의 욱일기, 일본제국 육군의 욱일기, 육상자위대의 욱일기,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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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로 대한제국을 모욕한 일본
'떠오르는 아침 해(旭日)'라는 의미의 욱일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일본군국주의의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이 자행됐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한테는 욱일기가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욱일기가 멸망 직전의 대한제국 사람들한테는 다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일본의 대외침략이 본격화되기 전인 이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욱일기가 모멸감을 주는 깃발로 비칠 만했다.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을 강요하고 외교권을 빼앗았다. 그런 뒤 이 늑약에 따라 이듬해에 한국통감부를 설치했다. 이때는 대한제국이 있었으므로 '한국'통감부라는 이름의 기관을 설치했고,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없어진 뒤에는 한국이란 명칭을 쓸 필요가 없으므로 '조선'총독부란 명칭의 기관을 두게 된 것이다.
과거에 유목군주인 칸이 한(汗) 혹은 한(韓)으로도 표기된 데다가 대한이란 명칭의 황제국까지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이란 국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한을 조선으로 바꾸고 식민통치기관도 '조선'총독부로 명명한 것이다.
일본이 아직은 '한국'이란 국호를 존중해줘야 했던 시기에 초대 통감이 된 게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다. 그는 1906년에 초대 한국통감으로 부임했다. 이때 일본은 이토의 부임을 기념하고 한·일 친선을 도모하고자 기념엽서 한 장을 발행했다.
일본인들은 이 엽서에 이토의 얼굴과 16개 햇살의 욱일기를 등장시켰다. 거기에 더해 태극기도 함께 등장시켰다. 대한제국 사람들이 불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순히 태극기가 등장한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욱일기 및 이토 얼굴보다도 아래에 태극기가 배치된 점이 기분 나쁠 수밖에 없었다. 욱일기와 이토 얼굴을 통해 '칸의 나라' 대한제국의 국기에 모욕을 줬던 것이다.
개인이 소장 중인 이 그림엽서를 소개한 목수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의 논문 '일제강점기 국가상징 시각물의 위상 변천-애국의 아이콘에서 상표까지'는 이 엽서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아래 글 속의 '또 다른 엽서'는 이 엽서를 가리킨다.
"이토 히로부미를 주제로 한 또 다른 엽서는 태극기와 일본기가 함께 제시되어 있어, 양국의 가교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욱일승천기를 오른쪽 위에 두고 태극기를 왼쪽 아래에 두어 은연 중에 위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가 2014년 발행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27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