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재일대한청년단을 예방한 자리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민간 단체인 대한청년단의 총재를 맡았다. 이후 대한청년단은 민간인 살해와 불법구금을 진두지휘하다 국민방위군 사건에까지 연루된다.
대한뉴스
이승만의 권력욕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았기에 그래도 미국식 민주주의를 지킬 줄 기대했던 것이 허망한 꿈이었다.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는 헌법이나 제도는 한낱 장식물로 취급할 뿐이었다.
불과 2년 전 부산에게 정치파동을 일으키면서 발췌개헌으로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종신 대통령을 꿈꾸면서 1954년 5월에 실시된 제3대 민의원선거에서 대규모 부정선거를 저질렀고 그 결과 자유당이 원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유당은 대통령 중임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만들어 공고기간을 거쳐 11월 1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국회상정에 앞서 이승만 정권은 '뉴델리 밀담설'을 조작하여 보수 반공의 본산인 민주국민당(민국당)을 용공으로 몰아가는 등 개헌안 통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이 개헌 반대운동을 제압하고 개헌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조작한 뉴델리 사건은, 전 민국당 선전부장 함상훈과 신익희 민국당 위원장이 1953년 6월 2일 당시 국회의장 자격으로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 대관식에 참석한 후 귀국하는 길에 인도의 뉴델리 공항에서 6ㆍ25 때 납북된 조소앙과 밀담하고 비공산, 비자본주의 제3세력을 규합, 남북협상을 추진하여 한반도를 중립국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이같은 사실을 날조하여 정적을 용공으로 몰아가면서 종신집권의 개헌을 감행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