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5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박근혜 정부의 보수단체 불법지원(‘화이트리스트’) 관련 선고심 실형을 선고 받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버스에 오르고 있다. 김 전 실장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 되었다.
이희훈
사건의 자초지종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범죄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보자.
우선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실 사람들이다. 총책임자는
김기춘 비서실장(2013.8~2015.2)이다. 김 실장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의 정무수석이 이 불법적 행위를 이끌어간다. 처음에는
박준우 정무수석(2013.8~2014.6)이 시작했으나, 그 후임자인
조윤선 정무수석(2014.6~2015.5)과
현기환 정무수석(2015.7~2016.6)도 이 사업을 이어간다. 김기춘 실장이 2015년 2월에 물러나지만 청와대의 이 사업은 3년 동안 이어진다.
실행 업무를 맡은 곳은 정무수석 산하의 국민소통비서관실이다. 이들은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상관들의 승인을 받은 후 전경련 측에 보내고 전경련에 자금제공을 다그친 이들이다.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2013.3~2014.6)과 그 후임자인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2014.10~2016.2),
오도성 국민소통비서관이다. 그리고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최홍재 선임행정관, 허현준 행정관, 오도성 행정관(나중에는 비서관이 됨)도 있다.
전경련 측에서는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정무수석들을 상대했다.
이용우 사회본부장, 박찬호 전무,
이아무개 사회협력팀장이 비서관 또는 행정관의 연락을 받아 자금제공 업무를 처리하였다.
청와대가 지목한 어버이연합은 8억4800만 원으로 제일 많이 받아
그렇다면 청와대가 불법을 저질러가며 자금을 제공한 42개 보수우익단체들은 어떤 곳일까. 아래는 대표적인 곳들이다.
우선 제일 많이 돈을 받은 곳은 어버이연합이다. 이곳은 가장 먼저 전경련의 돈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2014년 2월 19일에 받은 7천만 원을 시작으로 2016년 3월까지 모두 20회에 걸쳐 8억 4800만 원을 받았다.
다음으로 많이 받은 곳은 예비역 대령 서정갑이 이끈 국민행동본부이다. 11회에 걸쳐 4억 8천만 원을 받았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도 14회에 걸쳐 3억 8622만 원을 받았다. 다음으로 애국단체총협의회가 7회에 걸쳐 2억 6014만 2050원을 받았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은 12회에 걸쳐 2억 4천만 원을 받았다. 어버이연합을 비롯해 이들 단체는 보수우익 성향뿐만 아니라 '아스팔트 단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과격한 거리시위와 집회에 몰두한 곳들이다.
차세대문화인연대는 7회에 걸쳐 2억 3202만 원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를 옹호하는 역할을 열심히 했던 이 단체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이 각별히 자금제공을 챙긴 곳이다. 서경석 목사가 이끌던 선진화시민행동은 5회에 걸쳐 2억 1750만 원을 받았다. 뉴라이트 세력의 초기를 이끌었던 시대정신도 9회에 걸쳐 2억 500만 원을 받았다.
월드피스자유연합은 12회에 걸쳐 1억 5640만 원을 받았는데, 이들은 박근혜가 지목한 이른바 '4대 법안' 추진을 반대하던 야당 의원들을 공격하는 집회와 기자회견을 수 차례 열었다. 청와대가 2015년 말과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이 단체에 집회나 기자회견 개최를 주문하고 4대 법안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 낙선운동을 벌이게 한 일은 따로 소개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청년단체들에도 전경련 자금을 불법적 방식으로 제공한다. 청년이 만드는 세상(청년만세)이 7회에 걸쳐 1억 4270만 원을 받았다.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이 8회에 걸쳐 1억 4200만 원을, 한국대학생포럼이 9회에 걸쳐 9307만 원을 받았다.
보수적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데 유용한 잡지나 기사를 발행하는 곳도 청와대 화이트리스트에 들어 있었다. 대학교나 고등학교에 무상으로 배포되는 보수적 잡지인 <바이트>는 12회에 걸쳐 3억 3646만 원을 받았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20대 국회의원인 신보라 의원이 <바이트> 편집장 출신이다. 스토리케이도 13회에 걸쳐 2억 6460만 9000원을 받았고 미디어워치, 올인코리아 등도 청와대를 통해 전경련 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우파단체 대표들, 김기춘에게 자금지원 요구
이제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2013년 8월, 대통령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김기춘이 임명된다. 그는 2013년 10월 8일, 박준우 정무수석, 정무수석실의 신동철 소통비서관과 함께 서울 성북구에 있는 삼청각에서 보수 우익단체 대표자 10여 명과 오찬을 나눈다. 김기춘 실장이 만난 이들은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 애국단체총연합회 이상훈 상임의장, 재향군인회 박세환 회장 등이었다. 이들 보수우익단체들 대표들은 이렇게 말한다.
"진보단체들은 몇만 명씩 집회를 하는데, 보수단체는 지원만 되면 진보단체보다 더 큰 규모의 집회도 할 수 있다. 현재 보수단체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우니 청와대에서 도와 달라."
그 후 김기춘 실장은 박준우 정무수석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건전 보수 단체 육성방안을 강구해보라.'
이 지시는 박 수석을 거쳐 신동철 소통비서관과 최홍재 선임행정관에게 전달되고, 최홍재 선임행정관은 허현준 행정관과 함께 실행방안을 마련한다. 두 사람은 '시민단체 균형발전 방안', '건전단체 육성방안' 검토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고 국민소통비서관실의 또 다른 행정관에게 다듬어 완성하게 한다.
이 보고서들에 특정 정치성향 단체들의 재정·기획 능력 향상이나 청년단체 연계방안 등을 담았다. 2013년 12월, 최 선임행정관은 완성된 두 보고서를 신동철 비서관에게 보고하고, 이는 다시 박준우 수석을 거쳐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된다.
김기춘 "보수단체 자금 지원 방안을 강구해라"
보고를 받은 김기춘 실장은 박준우 수석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보수단체 자금 지원 방안을 강구해보라. 신동철이 잘 아니까 의논해서 처리하라."
그 결과 신동철 비서관이 12월 말 즈음에 박준우 수석과 김기춘 실장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전경련을 통해 보수단체에 자금지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신동철 비서관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김완표 전무로부터 전경련이 보수적인 시민단체들에 자금지원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이렇게 보고했다.
당시 전경련은 회원사들이 낸 회비 중에 일부를 사회협력사업비 또는 사회공헌사업비 계정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전경련은 시민단체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사회협찬관리 내규에 따라 내부 심의를 거쳐 자금을 지원하고, 지원받은 단체로부터는 지원금 사용처에 관한 증빙서를 제출받아 사후관리하고 있었다.
이런 방안을 보고받은 김기춘 실장은 자신이 지목하는 5개 단체를 포함하여 보수우익단체들을 지원할 수 있게 하라면서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만나보라고 신동철 비서관에게 지시한다. 이때 김기춘 실장이 지목한 5개 단체는 한국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애국단체총협의회, 선진화시민행동, 그리고 국민행동본부였다.
최홍재 "청와대에서 결정, 15개 단체에 30억 원 지원해달라"
이에 따라 2014년 1월 9일에 신동철 비서관은 서울 중구에 있는 한 호텔의 일식당에서 삼성그룹 김완표 전무의 소개를 받아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
"청와대에서 시민단체 쪽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또 그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호텔의 비즈니스센터에서 전경련의 박찬호 전무도 처음 만나는데,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수단체들이 어려우니 많이 도와달라."
그 뒤 신동철 비서관은 최 선임행정관과 함께 김기춘 실장이 지시한 5개 단체에 '차세대문화인연대',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 '바이트', '스토리케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을 포함시켜 자금 지원 대상 단체로 15곳을 선정한다. 이들 15개 단체별 지원금액도 배정하여 박준우 수석에게 보고한다. 이는 김기춘 실장에게도 보고되는데, 김 실장은 이대로 전경련에서 지원하게끔 하라고 지시한다.
김기춘 실장의 승낙이 떨어지자 최홍재 선임행정관이 2014년 1월 20일경에 전경련의 이아무개 사회협력팀장에게 연락한다. 그는 이 팀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청와대 내부에서 결정되었다. 청와대에서 지정하는 15개 단체에 총 30억 원을 지원해주면 좋겠다."
신동철 "실장님이 직접 챙기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