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김성숙 선생젊은 시절 김성숙 선생의 사진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1920년대 중반기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의 대학가는 각종 사상과 철학, 이데올로기가 난발하는 '자유의 화원'이었다. 불행하게도 조선의 서울은 식민지의 중심이어서 자유와 학문은 커녕 탄압과 검속의 우울한 지대였다.
김성숙은 전통유학의 어린시절에 이어 한때 기독교에 호기심을 가졌고, 5년여 동안 불승이 되고, 사회주의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나키즘에 심취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에 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불변의 중심가치는 조국의 독립을 전취하는 저항적 민족주의에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의 수단가치로 인식되었다. 망명시절과 해방 뒤의 행적이 이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