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을 넘기면서는 확실히 몸이 먼저 달라졌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몸이 안 따라온다"는 군내나는 말을 내 입으로 하게 된 게 바로 이때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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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을 넘기면서는 확실히 몸이 먼저 달라졌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몸이 안 따라온다"는 군내 나는 말을 내 입으로 하게 된 게 바로 이때쯤이다. 며칠 야근해도 아침이면 벌떡 일어날 만큼 체력이 좋았는데 점점 무거워지더니 마흔 중반에 이르자 더 이상 그런 아침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컨디션은 떨어지고 몸 여기저기 삐걱거리더니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 같지 않은 몸을 느낄 때마다 공연히 서러워지고 당혹스러웠다. 한번 아파 본 사람은 안다. 몸이 정신을 지배하는 비중이 꽤 높다는 걸.
나만 이런 건 아니다. 재작년에 친구는 어느 날 허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퇴행성'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 몸이 '퇴행'하고 있다는 공식적 선언을 듣고 늘 긍정적이던 친구는 한동안 의기소침해했다. "벌써 퇴행이라니, 하고 생각해 보니 그럴 나이더라. 운동 좀 할 걸." 운동과 담쌓아왔던 친구는 그 후로 PT를 받기도 했고, 지금은 요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직업상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허리와 어깨 통증은 만성 수준이었다. 몸 여기저기가 괜히 쑤셨고, 특히 밤에는 등이 너무 아파서 깨기 일쑤였다. 몸이 아프니 생체 리듬, 생활 리듬까지 무너져버렸다. 정형외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본 결과, 목 디스크에 척추측만이었다. 내 몸은 한심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운동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된다.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찾아야 하는데 마음에 가는 게 없었다. 달리기를 하자니 체력이 달리고, 등산을 하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PT를 하자니 내 수입 수준에서 돈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적인 운동을 안 좋아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요가와 필라테스를 선택했다. 역시 수영과 마찬가지로 뻣뻣한 내 몸은 아무리 해도 나무토막이었다. 선생님 말로는 내 몸이 많이 앞쪽으로 굽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반년이 넘어도 제자리걸음인 내 몸뚱아리는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이었다. 슬그머니 눈치가 보였고, 그래서 슬그머니 그만두었다.
이것저것 시도한 운동에 실패하고,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게 춤이다. 마흔 중반에 탱고에 도전했다. 운동신경뿐만 아니라 리듬감도 제로여서 '춤'은 대학교 졸업여행 때 단체로 간 디스코텍에서 춘 게 마지막이었다.
그런 내가 탱고에 도전한 건, 더 늦게 전에 꼭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당시 내 상황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절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힘든 상황을 잊고 싶기도 했고, 전혀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용기를 얻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종의 살려는 발버둥이었던 셈이다. 또 춤은 그저 유흥일 뿐, 운동이라고 생각 못 했다가 좋은 운동이라는 말에 더 혹하기도 했다.
몸 따로 마음 따로는 여전했지만, 다행히 예상 외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1년 동안 꾸준히 배우며 내 몸은 탱고를 아는 몸이 됐다.
춤바람 나고 깨달은 것
꽤 재미를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딱 1년을 배우고 그만두었다.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면서 탱고 클럽까지 가는 교통편이 불편해지기도 했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는 내 몸뚱이에 실망해서 '그럼 그렇지' 하고 의욕을 잃어버린 탓이다.
그러다 다시 춤을 추게 된 건 방송평론가 이영미 선생님 덕분이었다. 50대 후반에 춤에 입문해서 사교 댄스를 이것저것 시도하며 인생 운동으로 삼았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접하면서 다시 혹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침 내가 작가로 일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에 선생님을 모시게 돼서 사심을 품고 물어보았다.
"재밌어서 배우고는 싶은데 중간에 안 늘고 정체되는 기간이 있어요. 안 느니까 재미를 잃어버리고 자꾸 포기하게 되던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선생님의 진단은 간단했다.
"그러면 포기하고 다른 춤을 배우면 되죠."
포기하는 건 실패가 아니고 다른 걸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말에 무거운 진지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명랑해졌다.
그 뒤로 바로 근처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솔로 라틴댄스 초급반에 수강신청했다. 시간대로 봐서 분명 중년 여성들이 많을 때인데, 다들 초보일 테니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교실에 딱 들어서는 순간, 아차 싶었다. '찰랑찰랑 찰랑대는~'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떠오를 만큼 수강생들의 화려한 무도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만 보니 라틴댄스용 구두도 다들 신고 있었다.
분명 안내에는 동작이 편한 옷, 외부에서 신는 신발만 아니면 된다고 했는데 이럴 수가. 수영장에 수영복 없이 간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편한 티셔츠, 실내운동화를 신고 온 사람은 나와 30대로 보이는 여성, 딱 두 명뿐이었다.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옆에 섰다. 알고 보니, 다른 수강생들은 지난 몇 달 동안 같은 수업을 계속 들어온 회원들이었다. 동작이 쉽지 않다 보니 익힐 때까지 하면서 옷과 구두까지 마련한 눈치였다.
완전히 쭈그러진 상황에서 수업이 시작됐는데, 역시나 춤은 진리다.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즐거움의 세포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추고 나면 땀이 쫙 빠진다. 다리에도 근육이 붙는 걸 느낀다.
기분 좋은 활기가 온몸에 차올라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파이팅도 생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기존의 중년 여성 부대의 막강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찰랑거리는 옷 없이, 반짝이는 구두 없이 혼자 열심히 추고 있다.
되는 걸 찾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