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차별을 할 의도가 아니라는 말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예 ‘공정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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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론적인 부분만큼이나 근래 몇 년 동안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문제적 사건들을 예시로 들면서 논거를 생생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저자는 나 역시 지켜보면서 경악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장애비하 사건도 언급한다. 2018년 12월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 행사장에서 이 대표가 축사 도중 "정치권에서 말하는 걸 보면 '저게 정상인인가' 싶을 정도로 보이는 그런 정신장애인들이 많다"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것.
고든 호드슨(Gordon Hodson)과 동료들이 연구에서 밝히듯,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유머, 장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비하함으로써 웃음을 유도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놀려도 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반복된다.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차별을 할 의도가 아니라는 말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예 '공정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누구나 노력과 능력으로써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있다' 즉, 능력주의(meritocracy)가 바로 그렇다. 능력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편견 없이 타인의 능력과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다.
능력주의 체계는 편향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간과한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 경험, 사회경제적 배경 등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든 편향된 관점을 가지기 마련이다. 어떤 능력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그 능력을 어떤 방향으로 측정할 것인지와 같은 판단은 이미 편향이 작용된 결정이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법무사 시험에서 문제지•답안지와 시험시간을 모두에게 똑같이 주면, 시각장애인에게 불리하다. 제과제방 실기시험에서 모든 참가자에게 똑같이 수화통역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청각장애인에게 불리하다. (중략)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도리어 누군가를 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indirect discrimination)의 예들이다.
처음에 <겟 아웃>을 통해 간접차별과 선량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듯, 현재 미국사회 역시 백인이라면 겪지 않았을 법한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는 이렇다. 흑인이 뉴욕의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1~2달러짜리 커피를 시켜놓고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는 한인 노인들을 경찰에 신고했고, 필라델피아의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매장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흑인 청년들에게 나갈 것을 요구했다가 나가지 않자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서 외국(특히 서양)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중국어(혹은 일본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게 가장 대표적이다. 또는 식당이나 상점 등에서 비백인이라서 받는 불합리한 처우들도 종종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거의 항상 빼놓지 않고 '그거는 차별이 아니라 그냥 친근함의 표시일 뿐이다', '좋게 얘기했는데 왜 그렇게 반응했느냐'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엄청난 인종차별주의자일 리는 없겠지만, 서양에 거주하는 백인이라는 정체성은 분명 기득권이고, 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차별에 가담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이렇듯 인종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는 다양한 정체성이 있고, 그래서 다양한 차별의 양상 역시 존재한다.
우리가 미처 차별과 배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이제는 점차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외국에서는 차별의 피해자였지만, 국내에서는 언제든 우리도 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 <선령한 차별주의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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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로 바뀌지 않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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