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한빛 PD의 생전 모습
김종훈
"형은 나쁜 말로 표현하면 지극히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바꿔말하면 공감 능력과 감수성이 그만큼 풍부한 사람이었다."
CJ E&M 채널 tvN에서 조연출로 일하다 2016년 10월 26일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이사가 "형 이한빛 PD는 어떤 사람이었냐"라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다.
고 이한빛 PD는 2016년 3월 CJ E&M 입사 후 처음으로 받은 월급의 절반을 416연대와 KTX 해고 승무원들을 위해 사용했다. 이한솔 이사는 "형은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이었다"면서 "용산참사 추모미사 마지막 날에 현장에서 형과 엄마를 우연히 만났다, 형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 왔기에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형은 예민했다. 바라마지 않았던 드라마 PD가 됐지만 방송가에서 당연시되는 과도한 노동과 비정규직 계약 해지 업무에 괴로워했다. 특히 해고된 계약직 직원들의 월급과 선입금을 돌려받는 임무(계약 중도 해지 때 선입금을 돌려받는 일)는 예민했던 그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 더욱이 그는 조연출로 참여한 드라마 <혼술남녀>의 촬영 기간 55일 중 딱 2일만 쉬었을 뿐이다.
이한빛 PD가 입사 9개월 만에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하는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이유다.
형이 허망하게 떠난 뒤 남은 가족들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CJ E&M은 고인의 죽음이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2016년 11월 청년유니온과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등 17개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혼술남녀>신입조연출사망사건대책위원회'가 꾸려진 뒤에야 CJ E&M은 이듬해 6월 '고 이한빛 피디 유가족과 대책위에 드리는 사과의 글'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남은 가족들은 위로금 대신 미디어 종사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는 법인 설립 기금을 요청했다. 2017년 12월 그의 이름 '한빛'을 따 사단법인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줄기의 빛, 한빛'이 대한민국 방송가의 심장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세워졌다. 이 PD의 동생 이한솔씨는 한빛센터에서 급여를 받지 않는 비상임 이사직을 맡고 있다.
한빛센터가 상암동에 세워진 이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간 무시돼 왔던 방송 제작 현장의 문제가 수면 위로 여실히 드러났고 증언이 쏟아졌다. 한빛센터는 제기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해나갔다.
특히 지난해에는 방송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끌어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해 방송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과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이러다 한빛센터에 신고 들어가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현직 PD와 방송사가 한빛센터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다.
4일 오후 한빛센터에서 이한솔 이사를 만났다. 앞서 이 이사는 지난달 30일 형의 사망 이후 한빛센터가 만들어지고 활동하는 과정을 모아 <가장 보통의 드라마>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아래는 이한솔 이사와 나눈 일문일답.
"한빛센터 존재를 현장에서 의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