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머신을 쓰지 않게되면서부터 팔게 된 더치커피. 실무자가 없을 때면 이용 주민 스스로 커피를 타서 마시고, 돈을 계산한다.
안은성
요즘 우리는 예전만큼 다양한 음료를 팔지 않는다. 샌드위치나 캐러멜 마끼아또, 초코라떼처럼 만들기 어려운 메뉴를 없애고 뜨거운 물이나 차가운 물만 부으면 되는 간단한 음료를 중심으로 메뉴를 간소화했다.
그러잖아도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데다 관리까지 어렵던 커피머신이 고장나 버린 뒤로 모든 게 바뀌었다. 이용이 간편한 더치 기구를 활용해 커피를 내려놓고, 누구라도 직접 타서 마실 수 있도록 냉장고에 비치해 둔다. 이용자가 좀 더 자유롭게 주방을 드나들며 음료를 타도록 하고, 마신 컵은 스스로 설거지하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이렇게 운영방식을 바꾼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실무자에게 집중된 부담과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다. 공간의 지속가능성이란 결국 '사람'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무자나 운영위원들이 아무런 보수 없이 지속해서 자신의 시간과 노동, 에너지를 내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건비를 줄 수 없으니 누구라도 쉽게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 강도여야 하고, 그래야 후발 주자가 뒤따를 수 있다.
둘째, 주민들이 서비스를 제공받는 손님으로 머무르기보다 마을카페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자발적 주체로서 함께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같은 주민일지라도 그저 비용을 치르고 음료를 사는 관계에만 머무르게 되면 주인과 손님 이상의 관계를 만들어가기가 어렵다. 마을카페를 자주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금고를 열어 직접 돈을 내거나 잔돈을 거슬러 가도 된다고 말하는 건 그 이상의 관계를 만들고 싶어서다.
결론적으로 음료를 판매하는 것은 공간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용주민들이 상호부조하는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판매를 통해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영업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마을카페 '나무'는 돈을 내고 커피를 사 먹는 여러 카페들 중 한 곳이 아니다. 운영 방식을 전환함으로써 이용자 모두가 주인이 되는 공유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카페 그 이상으로 자라난 '나무'를 꿈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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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간 주민들과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해오던 마을카페가 2021년 재개발 철거로 사라진 후 집 근처에 개인 작업실을 얻어 읽고, 쓰고, 공부합니다. 도시사회학 박사과정생으로 공간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실천과 연구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현재 지역자산화협동조합에서 시민의 자산화, 사회적경제, 로컬 연구, 지역계획수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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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카페에서 캐러멜 마끼아또를 안 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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