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도 로또를 산다
연합뉴스
지난 2006년 로또 1등 당첨금 19억 원(세금 5억 원)을 8개월 만에 탕진한 뒤 절도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다가 최근 다시 붙들린 39세 남자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13년 전인 26세 때 그는 절도 범행으로 경찰 수배를 받던 중에 로또를 구입했다. 이것이 1등으로 당첨됐다. 그는 처음에는 당첨금 일부를 가족들한테 썼다. 하지만 돈의 대부분은 도박과 유흥업소에 탕진했다. 유흥업소 직원에게 수백만 원을 팁으로 건네기도 했다. 세금을 제외한 14억 원을 8개월 만에 썼으니, 매일 600만 원 정도를 뿌리고 다닌 셈이다.
당첨금 탕진 4개월 만에 대구 금은방을 턴 혐의로 적발된 그는 1년간 복역했고, 출소하자마자 금은방 18곳을 털다가 2008년에 다시 검거됐다. 2014년에도 135차례의 절도 혐의로 붙잡혔다.
이번에 체포된 것은 부산·대구 지역 식당 16곳에서 3600만 원어치의 금품을 훔친 혐의 때문이다. 부산 연제구의 주점에서 400만 원짜리 귀금속을 훔치고 택시를 타고 도주하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된 게 검거의 단서가 됐다.
택시에 탑승한 그는 기사에게 "예전에 경남에 살면서 로또 1등에 당첨된 적이 있다"고 자랑했다. 13년 전 그 일을 무용담처럼 자랑하고 다녔던 모양이다. 기사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들은 경찰은 경남 거주자 중에서 로또 당첨자를 검색하는 방법으로 그의 신원을 특정해냈다.
이번 경우처럼 복권 당첨금을 단기간에 탕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화제가 되고 있다. 갑자기 굴러들어온 거액을 주체하지 못하고 몇 년 내에 날려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39세 남자의 '8개월 만의 당첨금 전액 소진'은 탕진 기간으로 따졌을 때 상위 기록(?)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비뽑기는 신성 모독'... 복권이 금지됐던 시절
복권으로 인한 해프닝들은, 국가라는 최고 권력집단이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한 풍경이다. 국가권력의 주관과 보증 하에 수많은 사람과 거액의 금액이 여기에 몰려들면서, 복권이란 존재가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경우에 따라 개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풍경도 생겨나게 됐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투쟁을 계기로 기독교의 전통적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권위가 견고했던 그 이전만 해도, 유럽 국가권력이 복권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복권의 필수적 요소인 추첨 혹은 제비뽑기가 신성 모독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니버트(David Nibert) 미국 위튼버그(Wittenberg)대학 교수가 집필하고 신기섭 한겨레신문 기자가 번역한 <복권의 역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비뽑기는 종교의식 도중 어떤 결정을 내릴 때나 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신의 의지를 발견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주기적으로 실시했다. 따라서 복권 놀음은 신성모독이자 신의 섭리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비난의 대상이었다."
제비뽑기는 고대 동아시아에서도 신성한 행위로 인식됐다. <주역> 해설서 중 하나인 <계사전>에 나오는 점치기도 제비뽑기 비슷했다. 대나무 가지 50개를 손으로 붙든 채 마음을 거룩히 하고 하나씩 뽑아 드는 방법으로 점을 쳤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정창군 왕요)도 제비뽑기로 왕위에 올랐다. 고려시대 역사를 압축적으로 정리한 <고려사절요>에서는 "종실(왕족) 몇 사람의 이름을 써서 심덕부·성석린·조준을 보내 계명전에 가서 태조에게 고하고 제비를 뽑았더니 정창군의 이름이 뽑혔다"고 말한다.
태조 왕건의 신위 앞에서 제비를 뽑는 행위는 '이 비상시에 누가 고려 임금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려 시조신(왕건)의 의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오늘날 같으면 추첨으로 대통령을 뽑겠다고 하면 "말세가 됐구나"라는 탄식이 나오겠지만, 추첨이 신의 뜻을 발견하는 행위로 간주되던 시절이었으니 제비뽑기로 임금을 결정하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제비뽑기의 남용에 대한 거부감은 이슬람 경전 <코란>에서도 발견된다. <코란>에서는 화살을 사용한 제비뽑기로 내기를 하는 행위를 두고 "이것은 커다란 죄악도 되고, 인간에게 이익도 된다"면서 "죄악이 이익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이렇게 제비뽑기가 신성하게 간주되던 시대에는, 국가가 도박 사업을 벌여 재정을 확충하는 식의 발상이 생겨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민족국가)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현상이 인류 역사에 등장하면서부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가 복권 사업에 유혹을 느끼게 된 계기와, 대중이 그 사업에 호응하게 된 계기를 국민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비종교적 목적의 추첨행위가 금기시됐던 유럽에서, 국가 권력이 도박을 허용하거나 복권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중앙집권적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의 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가 복권 사업에 유혹을 느끼게 된 계기와, 대중이 그 사업에 호응하게 된 계기를 국민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의 역사적 현상에서 도출할 수 있다.
일석이조의 '복권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