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연풍 현감 시절 단양 일대를 유람하고 옥순봉을 그렸다. <병진년화첩>의 첫 번째 그림으로, 왼쪽에 ‘병진춘사단원’(丙辰春寫檀園)이라 쓰여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김홍도의 만년 대표작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중 한 폭인 보물 제782호 '옥순봉도'(玉筍峯圖)는 그가 정조의 초상화를 잘 그린 공로로 연풍 현감이 됐는데, 그 직후인 1796년에 그렸다. 그림 오른쪽 아래 조각배에 두 선비가 앉아 있다. 현감 시절, 그는 배를 타고 옥순봉을 유람했다.
'서리 내린 붉은 벼랑엔 가을 맑은 물 고요하고
거룻배 모는 이는 옥(玉)병풍 안으로 들어가네
천태만상이 화락에 쌓여 부족함이 없으니
화옹(畵翁)과 시선(詩仙) 모두 아직 할 일이 없어라'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이 옥순봉을 노래한 시다. 구한말 의병장 유인석과 함께 왜군 소탕에 앞장섰던 정운호는 제천8경을 노래하며 옥순봉을 제7경으로 꼽았다. 조선 시대 여러 문헌과 지리도서에도 옥순봉에 관한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시대 문신 김일손도 이곳을 탐승하면서 절경의 협곡을 극찬했다.
그는 실록을 만드는 사초에 훈구파를 비판하는 내용을 적었다가 무오사화로 능지처참을 당한 인물이다. 실학자 이중환은 <산수록>에 '옥순봉은 수많은 봉우리가 온전히 돌로 되어 있으며, 우뚝 솟아 마치 거인이 손을 잡고 있는 것 같다'고 기술했다. <여지도서> <해동지도> <1872년지방지도> <대동여지도> 등에도 옥순봉이 주요 경관으로 표기됐다.
카약을 타고 옥순봉을 바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