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전본부 이대식 본부장13일 민주노총 대전본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강제징용노동자상과 관련한 그의 심정을 들었다.
김병준
"2015년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대전에서는 소녀상에 모여 기자회견을 하고, 집회를 하고, 위안부 합의 원천무효와 파기를 외쳤습니다. 투쟁의 거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이곳에 이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울 것입니다.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는 장소, 친일청산을 다짐하는 장소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대전 평화의 소녀상은 대전시청 북문 앞 보라매근린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이대식 본부장은 이곳을 장기적으로 '평화공원'으로 만들고 친일청산과 평화에 대해 알아가고 다짐해가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지금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의 원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편에 서서 권력과 돈을 누린 자들이 해방 이후 다시 권력의 편으로, 자본의 편으로 붙어 지금까지 권세를 누려온 것이지요."
해방 이후 친일 세력들은 자취를 감춘 듯했으나, 미군정 시기와 이승만 정부에서 다시 요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친일경력이 있는 이들을 단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제 처벌된 사람은 실형 7인, 집행유예 5인, 공민권 정지 18인 등 겨우 30인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승만은 1949년 10월 1년 만에 반민특위를 해체해 버린다.
"노덕술 등 대표적인 악질 친일 경찰들이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다가 해방 이후에는 노동조합 활동가나 진보세력들에게 '반공'이라는 핑계를 대고 다시 때려잡으려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땅의 진보세력들은 피해를 당하고만 살아왔던 것이고요."
일제강점기에도 노동운동가들은 있었다. 그들에게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은 곧 독립이었고, 그들의 노동운동은 곧 독립운동이 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이 조합 내 활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탄압하던 친일 세력들은 해방 이후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다시금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