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생일을 맞아 펼쳐진 매스게임1958년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83회 생일을 맞아 매스게임이 펼쳐졌다. 매스게임을 하는 학생들 뒤에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내걸려 있다. 한 해 전인 1957년 82회 생일 때는 외무장관 조정환이 이승만을 '한국 혁명의 소년 선구자', '독립운동의 혜성', '민족의 국부', '민족의 태양' 같은 용어를 써가며 탄신을 경축했다.
국가기록원
한때 이승만은 살아있는 '우상'이었다. 이승만 우상화는 1949년부터 시작된다. 이승만 생일에는 국경일처럼 집집마다 태극기가 내걸렸다. 북한처럼 이승만 초상화가 학교 교실에 내걸릴 뿐 아니라 1953년부터는 지폐에도 그의 초상을 인쇄했다.
이승만 사진이 얼마나 많이 내걸렸던지, 4.19 혁명 직후 시인 김수영은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라는 시에서 이승만 사진이 내걸려 있는 장소로 동회(동사무소), 시청, 회사, 단체와 협회, 술집, 음식점, 양화점, 책방, 학교, 유치원을 일일이 나열할 정도였다. 김수영의 시처럼 '밑씻개'로 써도 충분할 정도로 우남(이승만의 호)의 사진은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1955년 3월 26일 이승만 80세 탄생을 기념하는 경축식이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자리)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경축식에서 노래 부른 합창단 규모만 1천 명에 달했다. 이날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승만 탄생 80주년인 1955년은 '쌍팔년도'라고 불린다. 무질서와 무법천지였던 이 해가 단기 4388년이었기 때문이다(1948년 정부 수립 후 우리는 단기 연호를 쓰다가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인 1962년부터 서기를 쓰기 시작한다).
문화계의 찬양도 이어졌다. '성북동 비둘기'를 쓴 시인 김광섭은 '우남 선생의 탄신을 맞이하여'라는 헌시에서 그를 "세기의 태양"으로 극찬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찬양하는 <우리 대통령>이라는 찬가도 만들어져 불렸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작사하고 <동심초>, <산유화>를 만든 김성태가 작곡한 노래다. '이승만 찬양가'를 만든 박목월과 김성태는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대통령 찬가>를 새로 짓기도 했다.
우남정, 우남로, 우남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