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로스쿨 천경훈 교수는 사법시험체제에서 꽃길만 걸어왔음에도, 로스쿨생들이 근시안적인 시험 준비에 매몰되는 주된 이유는 ‘소수만 합격하는 변시’, ‘불필요하게 어려운 변시’에 있으며 그 일차적인 문제는 ‘합격자 수의 기계적 통제’에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24일 천경훈 교수와의 인터뷰 장면.
박은선
- '사법시험체제의 엘리트'인데 2015년엔 왜 "사시존치론이 과거제 집착과 비슷하다"고 했나?
"당시 로스쿨 출범 후 이미 7년이 지난 시점이어서 로스쿨을 정착시키고 더 좋은 교육기관으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스쿨 구성원들이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제도를 흔드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글을 썼다.
나는 로스쿨 체제가 무조건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법시험과 연수원 제도도 여러 장점이 있었다. 선발의 공정성은 이미 많이 언급되었지만, 엄격한 선발에 이어 잘 짜인 교육을 통해 모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실무능력을 갖춰주었던 것은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하지만 대학교육 황폐화, 폐쇄적 특권의식 등 문제가 있었던 게 사실이고 이를 해결하고자 로스쿨 제도가 도입됐다. 그렇다면 로스쿨 제도의 취지를 잘 실현해 좋은 법률가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이다."
- 요즈음 '변호사시험은 1500 사법시험'이라며 과거 사법시험체제로 돌아가자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본질적인 문제다. '변시는 1500 사시'란 말은, 현 체제가 사법시험 체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차라리 로스쿨 다 없애고 전으로 돌아가자'는 반론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의대나 약대를 없애고 의료인 자격을 고시형 시험으로 취득하게 하자고 말하진 않는다. 의대, 약대 교육과정에서 독학으로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제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은 과연 로스쿨이 독학으로 얻기 어려운 그 무엇, 그러나 좋은 법률가가 되는 데 필요한 그 무엇을 제공하고 있느냐이다.
오랫동안 법률가 자격을 '시험을 통해' 취득하도록 하다가 '교육을 통해' 취득하도록 전환한 것은 특권의식을 내려놓게 하자는 취지도 있지만 그만큼 (독학으로 대체불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스쿨 교육과정에서 별로 제공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 지금의 로스쿨에 '로스쿨다운 교육'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뼈아픈 문제이다. 일단 내가 재직 중인 서울대 로스쿨을 기준으로 긍정적인 것 위주로 말해 보겠다. 법대 시절에 비하면 교육의 질이 분명히 향상됐다고 생각한다. 과거엔 교육의 수준, 밀도, 정성 등이 사실 많이 부족했다. 그 때는 사법시험 준비는 각자 하고 실무에 필요한 공부는 연수원에서 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교수도 자유로웠고 학생도 느슨했다. 지금은 로스쿨이 유일한 교육과정이라는 점을 교수나 학생이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수업의 질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로스쿨에서는 교수들의 실무연습 수업도 학생들한테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들었다. 국선변호, 난민클리닉 등으로 이루어진 임상법학 수업도 매학기 60, 70명이 참여한다. 내가 지도교수로 있는 학회에서는 학생들끼리 매주 점심시간에 변시와 무관한 전공세미나도 이어가고 있다. 나를 찾아와서 논문주제를 논의하고 내 지도로 졸업논문을 쓰는 학생도 매년 몇 명씩 있다. 물론 긍정적인 면만 부각한 것이긴 하지만, 그런 좋은 모습들이 아직은 남아 있다.
우리 로스쿨 학생들도 3학년 때에는 변호사시험에 집중한다. 동료들과 함께 로스쿨 프로그램을 잘 따라가서 완주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1, 2학년 때 선택과목도 듣고 학회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3학년 때에는 수험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러나 1, 2학년 때에는 변시의 공포에서 아직은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다."
- 하지만 그건 서울대만의 얘기가 아닌가?
"솔직히 그런 면이 있다. 서울대 로스쿨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여유' 때문이고, 여유란 결국 '변호사시험 합격 가능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제도 설계자들이 예상한 것보다 지금 로스쿨생들은 여유가 턱없이 부족하고 일부 로스쿨들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서울대 로스쿨생들도 변시의 압박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어서, 과연 이런 여유가 얼마나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1,2기 무렵과는 분위기가 판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