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변호사 출신인 신용인 교수는, "나는 실무가 출신이지 고시학원 강사 출신이 아니다. 이럴 거면 나 같은 실무가 출신 교수들 내보내고 고시학원 강사들을 데려오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사법시험을 거쳤던 그는 로스쿨의 실무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효과적인 법조인양성교육이 가능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변호사시험이 절대평가로 치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출처 : 오마이포토
- 전직 판사, 변호사였던 로스쿨 교수로서, 지금 로스쿨에서 '예비법조인을 양성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
"유감스럽게도 보람보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판사, 변호사였던 내가 교수가 된 건 그간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제자들을 '실무능력이 우수한 법조인으로 교육ㆍ양성'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의 로스쿨은 사실상 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 학생도 학교도 오로지 변호사시험 합격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강의도 수험 위주로 진행되고 실무능력 함양을 위한 교육은 사실상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실무가 출신이지 고시학원 강사 출신이 아니다. 차라리 나 같은 실무가 출신 교수들을 내보내고 고시학원 강사들을 데려오는 것이 낫겠다 싶다. 우리(실무가 출신 교수들)의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현실에 아쉬움이 크다."
-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우수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시험을 위한 공부'와 '실무를 위한 공부'는 다르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되었던 나는, 실무를 접하고 사법시험에 문제가 많음을 깨달았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려면 엄청난 양을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실무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직 시험 합격만을 위해 필요한 공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실무에 필요한 지적 능력은 암기량이 아니라 '리걸마인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기본법리를 충실히 이해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혹시 자기가 보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나올까 걱정되어 지엽적이고 순수 이론적인 부분까지 빠짐없이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공부량이 엄청나게 늘게 되고 그 공부량에 치이다 보니 막상 실무에 절대 필요한 기본법리는 소홀히 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빚게 된다.
또 실무에 대한 아무런 감이 없는 상태에서 공부하다 보니 아주 비효율적인 공부를 한다.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 책에서 '준비서면'이라는 단어가 도대체 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무조건 달달 암기했다. 사법연수원에서 준비서면을 처음 접하고는 허탈했다. 만일 내가 사법시험 공부할 때 준비서면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민사소송법 책을 훨씬 잘 이해했을 것이다. 다른 법과목들도 다 마찬가지다. 합격자 대부분은 합격 직후 시험용 법학지식은 풍부해도 실무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나 역시 사법시험 합격할 당시 등기부등본을 읽을 줄도 몰랐다. 그래도 시험에는 합격했다.
변호사시험도 비슷하다. 시험의 속성상 실무를 몰라도 얼마든지 합격할 수 있다. 따라서 변호사시험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우수한 법조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본다."
- 과거 사법시험체제에 실망한 만큼 로스쿨에서 제대로 된 실무 교육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로스쿨에선 종래 사법시험체제와 달리 실무교육이 이론교육과 함께 제도화되어 있다. 그 점만 보면 사법시험에 비해 상당히 선진적인 제도다. 하지만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현행 변호사시험이 로스쿨의 실무 교육을 외면하게 만들고 형식화시키고 있다.
로스쿨에서는 '송무수행 지도'라는 실무 과목이 있다. 학생들이 실무변호사의 지도하에 실제 사건을 담당하면서 송무과정 전반을 직접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실무능력을 함양하도록 하는 실무과목이다. 내가 볼 때 로스쿨에서 가장 필요하고 정말 중요한 교과과정이다. 하지만 송무수행 지도는 형식화ㆍ최소화되고 있다. 당장 변호사시험에 직접 도움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만일 로스쿨 학생이 실제 사건을 맡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며 씨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학생의 실무능력은 상당히 향상될 것이다. 그게 진짜 로스쿨 교육이다. 하지만 변호사시험 앞에서 학생들에게 그런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변호사시험에 유용한 판례의 요지 수백 개 이상을 외울 시간에 송무수행에 집중하면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떨어지니 그렇다. 결국 송무수행 지도는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오직 변호사시험에만 매달리는 현실'에선 제대로 된 실무교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실무 교육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실무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로스쿨이 법학자가 아닌 실무가를 양성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실무가를 양성하는 기관에서 실무 교육이 중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왜 실무 교육이 중요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실무에서는 '형식지(形式知)'보다도 '암묵지(暗黙知)'가 더 중요하다. 암묵지란 학습과 체험을 통해 습득된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의 지식을 말한다. 암묵지는 대개 시행착오와 같은 경험을 통해 체득하게 된다. 책을 열심히 읽고 강의를 충실히 듣는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실무교육은 바로 그런 암묵지를 키우는 교육이다. 학생들은 송무수행지도와 같은 실무 교육을 통해 실무 현장을 직접 접하면서 문제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에서 암묵지를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실무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변호사시험 형태로는 암묵지의 수준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변호사시험은 형식지 평가에는 유용할지 모르겠으나 암묵지 평가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실무 교육은 변호사시험과 연관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 실무 교육을 열심히 받아도 변호사시험 합격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학생들은 실무교육을 도외시한다. 책도 실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무용 책이 아니라 변호사시험 합격에 도움이 되는 고시학원 교재를 읽고, 실무 실습을 하는 대신 학원 강사의 강의를 듣는데 온통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날이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학생이 실무능력이 뛰어난 법조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있어 실무교육에 충실하게 된다면 그만큼 변호사시험에 떨어질 가능성은 더 커진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지금 로스쿨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