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상도2동 철거싸움 당시의 모습상도2동 철거싸움은 세입자들이 망루를 쌓고 장기간 농성을 하면서 저항했을 뿐만 아니라 사제총 사용 논란이 일 정도로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오마이뉴스
상도역에서 국사봉터널 방면으로 걸어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상도동 더샵 아파트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다. 그냥 바라보는 것 만으로는 그 화려함의 이면에 어떤 역사가 숨어 있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상도2동에 있는 상도동 더샵 아파트 자리는 2002년부터 2004년 초에 이르기까지 철거민들의 철거반대 싸움이 처절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당시 언론에서도 이 철거반대 싸움을 자주 보도했을 정도로 세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격렬하게 진행됐다.
철거지역 세입자 20여 명은 '영구임대주택 입주'와 '아파트 건설 기간 임시주거지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건물 위에 15m 높이의 망루를 설치하고 장기간 농성을 벌이며 강하게 저항했다. 이 기간 철거민과 철거반원 사이에는 컨테이너를 동원한 진압시도와 이에 맞선 화염병 투척 등 격렬한 공방이 계속됐다. 세입자들은 대형 새총으로 골프공과 벽돌을 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사제총이 사용됐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싸움은 2004년 1월 20일 시행사와 동작구청이 세입자들에게 일정한 보상금과 임대주택 입주권을 주기로 약속하고, 세입자들이 1년 5개월간 지속된 농성을 풀면서 노량진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마무리됐다.
이 사건으로 김영재 세입자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하여 8명의 철거민이 구속됐다. 철거민들은 건설자본 위주의 재개발 정책을 비판하면서 국가가 보장해주지 않는 세입자의 주거권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망루까지 설치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 역시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6명이 사망한 2009년의 '용산참사'와 비교되기도 한다. 상도동에서 경찰은 용산과 달리 비교적 신중하게 대처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컨테이너를 사용한 것도 경찰이 아니라 용역업체였다. 경찰은 철거지역에 대해 가스공급을 끊고 단전조치를 취하기도 했지만, 불상사를 우려해 경찰력을 직접 투입하는 방식의 '검거 작전'을 펼치지는 않았다.
2000년대 초반의 '상도2동 철거싸움'은 1980년대의 '사당동 철거싸움'과 더불어 주거권 실현을 위한 도시빈민들의 대표적 투쟁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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