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인용된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
이처럼 한국전쟁 이전부터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을 빨갱이로 몰았다. 반면, 진보 진영은 상대방을 친일파로 인식했다. 이로 인해 한국전쟁 이전부터 친일파와 빨갱이가 반대 개념으로 양립돼 있었다. 그런데도 위 칼럼에서는 "빨갱이라는 비어가 대중에게 각인된 결정적 사건은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단연 6.25 전쟁이다"라고 주장했다.
만약 '결정적'이란 표현이 없었다면, 위 문장은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는 명백한 오류가 된다. 하지만, '결정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감으로써, 한국전쟁 전에도 대중한테 어느 정도 각인돼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확실히 각인된 것 같은 느낌이 독자의 머리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칼럼 필자가 '명백한 오류'라는 비판을 피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이란 말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친일파 대 빨갱이? '반북 대 빨갱이'가 차라리 합당하다
이는 윤평중 교수가 한국전쟁 전에 빨갱이론이 확산돼 있었음을 조심스레 의식하면서 칼럼을 썼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점은 칼럼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결국 민족정기를 앞세운 문 대통령의 빨갱이론은 100년 집권을 노린 기억 전쟁의 방략이다. 현대 역사전쟁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정치적 경쟁 세력이 권력 쟁취를 위해 서로를 친일파와 빨갱이로 낙인찍어 숙청하던 치명적 상흔을 헤집었다."
정치적 경쟁자들이 서로 상대방을 친일파와 빨갱이로 낙인찍으며 싸웠던 치명적 상흔을 거론했다. 명백히 해방 직후의 상흔을 거론한 것이다.
빨갱이론이 한국전쟁의 산물이라면, 빨갱이의 반대 개념이 친일파가 될 수는 없다. 반북(反北)이 빨갱이의 반대 개념이 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위 대목에서 윤 교수는 '친일파와 빨갱이'를 반대 개념으로 거론했다. 이 두 개의 반대 개념이 대립한 시기는 해방 직후다. 한국전쟁 와중에 친일 청산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는 없었다. 친일파와 빨갱이가 상호 대립했던 시기를 언급했다는 것은 윤 교수 역시 빨갱이론을 한국전쟁 이전의 산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친일파와 빨갱이가 가장 극명하게 대립한 시기는 한국전쟁 이전의 해방정국이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빨갱이론이 왜곡됐으므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청산도 잘못된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빨갱이론'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빨갱이론에 대한 윤평중의 비판'이다. 따라서 문재인의 빨갱이론이 잘못됐음을 전제로 하는 위 칼럼은 근본에서부터 오류를 깔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역사 청산에 대한 거부감이 강렬하다 보니 그 같은 인식상의 오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윤 교수 자신도 역사청산의 필요성을 모르지는 않는다. 칼럼 앞부분에서 그는 "일제의 폭압 통치는 최악의 민족적 상처였다"라면서 "역사를 변조하고 한국어를 말살해 우리 얼까지 파괴하려 했다"라고 지적했다. 일제와 친일파에 의해 우리 역사가 왜곡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그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1945년 이후에도 역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17년 2월 10일에 있었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이명헌 전 교육부장관과의 대담에서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역사청산 필요성 아는 윤평중... 하지만
<철학과 현실> 2017년 봄호 별책 부록에 실린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라는 제목의 3자 대담에서 그는 "과거의 군사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에는 국가안보를 빌미로 해서 얼마나 장난을 많이 쳤습니까?"라면서 "국민들은 그것에 많이 데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혐오하거든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