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pus Dahab World Dive Center 안뜰. 이곳에서 장비 세팅을 하거나 해체를 한다.
차노휘
2. 관념적인 물 공포증
그 공포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상하다. 학기 초마다 학생들의 글쓰기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진단평가를 실시한다. '생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글감으로 주곤 하는데 학생들 중 의외로 물 공포증이 있었다. 물놀이를 갔을 때 바나나 보트가 뒤집어졌다거나 같이 간 어른이 심하게 장난을 쳤다거나 해서 얻게 되는 그런 구체적인 거였다.
내게도 물과 함께한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는 팬티만 걸치고 동네 아이들끼리 시냇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엄마가 들려준 물귀신 이야기도 생생하다. 가지처럼 보랏빛 얼굴을 하고는 물에서 노는 아이들의 다리를 잡아당기고는 놔주지 않는다고 했다. 물귀신이 다리를 잡은 아이는 물속에서 꿈쩍도 못하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신춘문예 등단작을 쓰기 위해 장례식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익사한 사체를 처음 봤다. 퉁퉁 부른 보랏빛이었다).
십년 전에는 발을 헛디뎌 사찰 호수에 빠진 적이 있다. 급히 나오긴 했지만 그 몇 초간의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던 내 인생과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구경하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얼굴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사찰 사건 전부터 나는 저수지 주위로 아침 운동을 갈 때면 물가로 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어떤, 아주, 끔찍한 물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어서 아예 머릿속에서 삭제해 버린 것이 아닐까, 라고 돌려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내가 물속이 궁금해진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요르단 와디무집(Wadi Al Mujib) 계곡 어드밴처 때였다. 로컬가이드와 물살을 헤치며 목적지(Siq Trail)까지 올라갔을 때(쉬운 코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이킹을 시작한 뒤로 내게 근력과 담력이 붙어 해볼 만했다) 그가 내게 수경을 건넸다. 폭포 아래라 하얀 포말이 비누거품처럼 일었다. 물속이 보일까 싶었다. 수경 너머로 보이는 물속은 의외로 잔잔했고 반질반질 돌멩이 위로 물고기들이 유영했다.
나는 귀국하자마자 수영 강습을 신청했다. 호흡법, 발차기 등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영장에 다녔다. 물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접근이 쉬운 집 근처 체육관 수영장이 적당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염두에 둔 일이기도 했지만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 굳이 수영 실력과 상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다합으로 떠나기 전 3개월 동안 수영을 배웠다. 자유형, 배영, 평영을 그런 대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수영장으로 갈 때면 가슴이 답답했다.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두려움은 가슴 압박으로 이어졌다. 소독한 물을 꽤나 마셨지만 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견디면 극복되리라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