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그릴의 개업 당시의 모습.
서울특별시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그 것들은 아물아물하는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 이상의 소설 <날개> 중
서울역 2층의 초호화 레스토랑이었던 '그릴'과 1층 대합실 옆 '티룸'은 당대 한반도의 '인싸'들이었던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자주 찾던 공간이었다. 돈깨나 만진다는 사람들이 1등 객실을 타고 열차를 타기 전 정찬을 즐기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릴은 사람들에게 많은 선망을 받았다.
200명이 한 번에 식사할 수 있고, 40명의 요리사가 있는 규모에 걸맞게 가격은 참으로 비쌌다. 당시 설렁탕이 15전 하던 시대에 이곳의 정찬은 3원 20전을 넘나들었단다. 현재의 '호텔 식당'과 비슷한 위상을 지녔던 것이다.
'그릴'과 '티룸'은 문화예술인과 체육인들의 모임장소로도 애용되었다. 소설가 이상, 박태준이 자주 찾는가 하면, 이상은 소설 <날개>에 이곳과 미쓰코시(현재 신세계 본점)의 당시 모습을 담아내기도 했다. 1934년에는 전경성탁구회와 전관동학생 간의 탁구대회 이후 환영회를 '그릴'에서 개최하는가 하면, 1936년에는 조선축구협회의 신임이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기록도 있다.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해 떠났던 '조선 최초의 빙상 선수'인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를 환송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린 다음 날, 장우식 선수의 부친인 장순익씨가 떠나는 선수들에게 그릴의 별실에서 아침을 대접했다는 기록이 1935년 12월 6일 동아일보의 보도에 남아있다. 한국 최초의 동계 올림픽 선수들도 들렀던 역사의 장소였던 셈이다(이들은 동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한 한국인이지만, 당시 한국팀이 아닌 일본팀으로 출전해야 했다. -편집자주).
'첫 번째 민영화 시비', '서울역 회군' 이루어진 역사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