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 책임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실천하려면, 지난 수십 년간 존재해왔던 미국의 독자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성호
-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남북경협이 얼마나 가능할지가 달려 있다. 2016년 이후 유엔제재가 강화되면서 유엔제재가 한국의 독자제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유엔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실제 추진할 수 있는 남북경협 사업은 거의 없는 것 아닌가?
"지금 상황에서 남북이 할 수 있는 건 인도적 지원 정도다. 유엔에서도 인도적 지원 자체를 막고 있는 건 아니니까. 미국 제재도 인도적 제재는 아예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사실 남북경협은 아니다. 그 외에 지금 제재 하에서 남북이 해나갈 수 있는 경협은 사실상 없다."
- 남북경협 사업이 풀릴 정도로 제재가 해제되려면 이번 북미회담에서 비핵화 협의가 어느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건가?
"협상하기 나름이다. 지난해 6월 센토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가 불가역적 단계에 도달하면, 제재 프로세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그 불가역적 단계가 무엇인지는 협상해봐야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미국이 예전보다 제재 해제의 시점을 많이 완화했다고 본다. 문턱이 낮아진 거다.
예전에는 영변 핵시설 폐기로는 부족하다는 게 미국의 기본 입장이었다. 이미 만들어 놓은 핵무기를 드러내야 제재를 풀 수 있다는 뉘앙스였는데 최근에는 영변 플러스 알파 이야기가 나오잖나. 영변을 확실히 폐쇄하고, 검증하면 제재 해제 프로세스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읽힌다."
- 남북경협이 가능한 분야가 최소한 2008년 금강산관광 중단 이전 수준으로 복구되기 위해서 또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
"기존의 남북경협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먼저 유엔제재와 관련한 미국의 독자제재가 풀려야 한다. 그리고 유엔제재에는 없지만, 미국 대북제재강화법(2016년 제정)에 들어가 있는 부분이 해소돼야 한다. 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제3국 기업, 이를테면 개성공단 같은 경우가 미국 제재로 세컨더리 보이콧( secondary boycott, 제재 대상인 북한과 거래한 제3국의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재)에 걸린다. 이게 풀리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재개할 수 없다.
남북 경협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 2375호, 2371호 정도가 해제되면, 가능하다. 남은 건 벌크캐시(대량현금)다. 벌크캐시는 2013년에 채택된 제재 2087호에 처음 명시된 건데, 2013년도 이후에도 남북경협은 해왔다. 그런 면에서 (벌크캐시는)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중 핵심은 남북합작사업, 북과 합작 금지, 기존에 합작했던 것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제재 2375호(2017년 유엔안보리 채택)다. 여기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이 다 걸린다. 북에서 생산한 의류, 옷, 기계, 전자기기 수출을 못 하게 했다. 이게 안 되면 개성공단이 존재할 이유가 없잖나. 그리고 뭐라도 만들려면, 물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제재 2397호에서 그걸 다 막았다. 금강산 관광 같은 경우는 남북 합작과 시설 개보수를 위해 물자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 제재에 걸려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빨라도 연말"
- <미국 대북제재의 체계와 해제요건>이라는 보고서에서 유엔제재 이전부터 있었던 미국의 독자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3대 경제벨트)의 추진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북에 인프라 깔고 공단을 개설하고 민간기업이 들어가는 거다. 지금은 걸리는 게 많다. 전략물자의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미국 상무부의 '수출관리규정'(EAR)이 있다.
개성공단이야 옷이나 시계를 만드는 기계 정도니까 전략물자와 상관없지만, 중화학 단지나 첨단단지를 만든다고 하면 얘기가 다르다. 여기에 들어가는 설비나 부품은 기술 수준이 상당할 것이다. 미국산 부품과 기술이 10% 이상 포함된 제품이 북에 들어가려면, 미 상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품, 기술이 전략물자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 이걸 넘어서야 한다.
또 미국이 물자 반출대상국으로 분류해 놓은 등급표가 있다. 가장 엄격하게 통제하는 게 E그룹이다. 테러지원국과 쿠바에는 웬만하면 물자를 보내지 말라는 거다. 지금 북이 E그룹이다.
유엔안보리 제재 2270호에 캐치올(Catch all)제도도 살펴봐야 한다. 전략물자 1종 물자는 무엇인지 항목이 있는데, 이건 절대 못 들어간다. 2종 물자도 있는데, 이건 항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신고를 하면 미국에서 (반출 여부를) 판단한다. 상황통제라고 하는데, 엄격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이 E그룹으로 돼 있으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면 D그룹에 들어갈 텐데, 이건 비핵화 진전을 지켜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략물자 반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 시간이 꽤 걸릴 거 같은데.
"그렇다. 금강산 관광 재개의 경우 올해 된다고 해도 연말에나 기대해 볼 수 있다. 개성공단 재개는 더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방식에 합의했다고 이걸 바로 풀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실무진이 조율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할 것 아닌가. 북미가 영변핵시설 폐기에 합의했다고 치자. 신고하고 사찰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의 개혁·개방 따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