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해야만 하는 온갖 노동에서 남편은 슬쩍 모른 체하며 발을 뺀다. 그런데 그런 남편보다 더 싫은 건, 내게 노동을 강요하는 이 사회다. 나는 노동을 선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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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아이에게도 나의 노동은 당연한가 보다. 언젠가 빨래를 널며 만 4세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이 옷이 대부분이기도 했고, 슬슬 집안일에 참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싫어, 엄마가 해야지, 엄마 일인데"라고 말하며 나를 놀리듯 짱구춤을 췄다. 충격이었다.
아이는 나와 남편을 분명 다르게 대한다. 유치원 준비물을 제대로 못 챙기면 나를 타박하고, 옷이 필요하면 내게 빨래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럴 때면 다 받아주지 않고 아빠의 역할도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성 역할 구분에 매일 놀란다. 유치원의 문화나 구조 또한 아이들에게 성 역할을 철저하게 교육시킨다. 첫 유치원 가족 모임에서 나는 바느질을 했고 남편은 텃밭을 갈았다. 내게 텃밭을 선택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유치원에서 보내는 모든 문자는 남편을 배제하고 나에게만 온다. 양육자가 꼭 참석해야 하는 활동에도 나만 초대한다.
우리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해야만 하는 온갖 노동에서 남편은 슬쩍 모른 체하며 발을 뺀다. 그런데 그런 남편보다 더 싫은 건, 내게 노동을 강요하는 이 사회다. 나는 노동을 선택할 수 없다.
여자와 사는 게 낫다
남자와 5년을 넘게 살아보니 의문만 한가득이다. 남자와의 동거에서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20대 초반부터 독립해 살았던 나는 두 명의 친구와 살아본 적도 있고 친여동생과도 오랜 기간 함께 살았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가사를 분담했고, 어느 한쪽이 바빠서 일방적으로 하게 되면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했다.
여자와의 동거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노동의 강도가 현저히 높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여자와 함께 살았던 경험이 무조건 편안했던 건 아니고, 생활습관이 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여자와 사는 것이 남자와 사는 것보다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 후 처음 겪어본 남자와의 동거에서는 게으름이 가능하지도, 용서되지도 않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 주지 않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드러나지 않았다. 얼굴에 철판을 깐 남편은 자신이 게으르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나는 내가 부지런하지 않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완벽한 아내,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배우자와 함께 도우며 살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결혼'이라면, 여자끼리 결혼해야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림자 노동에 시달리며 잠깐의 글 쓰는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 요즘, 날 도와주고 위로해 줄 누군가가 절실하다. 어쩌면, 나의 두 번째 배우자는 여자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