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표지
민음사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줄곧 어딘가 불쾌하고 불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이 내가 '여성'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인지, '나'라는 개인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인지 자주 헷갈렸다. 나는 혼자 고민하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페미니즘 모임'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우연히 엄마들끼리 함께하는 페미니즘 책모임 '부너미'를 알게 됐다('부너미'는 결혼하고 출산한 여성들이 모여 엄마들의 언어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을 탐구하는 모임입니다).
시간은 늘 부족했고 이야기는 늘 차고 넘쳤다. 우리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공명을 일으킬 때, 각기 다른 경험치가 서로의 시야를 확장할 때, 깨달은 바가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나는 이것이 우리의 페미니즘, 엄마들의 페미니즘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목소리를 냈고, 움직였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도돌이표를 지나고 나면
슈퍼우먼이 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나는 '어떤 아내 또는 엄마가 되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역할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는 이상 '나'라는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감당하면 될 일이었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 아이를 나와 독립된 존재로 여기고자 했다. 모성애를 의심받을지언정, 나를 지키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비련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 남편과 아이를 악역으로 등장시키지 않는 방법이었다.
결혼 7년차. 페미니즘 모임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부너미까지 밀도 높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 황금비율을 찾은 것처럼 만족감이 찾아왔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과하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나'를 중심에 놓는 생활. '김지영이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선 나는 꽤 만족했고, 이렇게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
우리 집에는 가부장이 없다. 나는 경제적·정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지 않다. 그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우리 가정의 주 수입은 내 월급이지만, 남편도 부지런히 자신의 영역에서 경제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역할 수행을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의 성 역할 규범은 꽤 무너졌고 그만큼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그랬다. 그런 줄 알았다. 처음 페미니즘을 만난 이후로 내 삶은 분명 바뀌었지만, 무언가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 숨 한 번 크게 내쉬지 못하고 계속 긴장하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 온 '집안일 분담' 문제에 또 다시 발목 잡혔고, 삐끗하는 순간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얼마 전 남편과 카페에 마주앉았다. "당신과 같이 살고 싶지 않아." 남편은 내 말에 당황했고 발끈했다. "당신, 페미니즘 책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책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사고방식을 문제 삼는 그 낡은 사고방식과 더불어, 지지리 바뀌지 않는 그의 생활방식이 문제였다.
어떻게든 집안일을 나누려고 했다.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고 자주 성공(?)했지만, 그 황금기는 길어야 몇 주간 지속될 뿐이었다.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다시 내 몫이 됐다. 그러면 나는 각성을 하고 집안일(가사노동뿐만 아니라 가정 유지를 위한 모든 것)을 재편성한다. 한동안은 다 이룬 것 같은데, 오래지 않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수없이 반복되는 도돌이표를 지나고 나면 남편과 내가 비슷하게 짐을 짊어지는 날이 올까? 인생에 일시정지 버튼이 있다면, 잠깐 눌러놓고 기다리고 싶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시계는 멈추지 않고, 우리는 나이를 먹고, 대부분의 집안일은 여전히 '엄마' 몫이다.
김지영씨, 잘 지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