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며 강제노동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희훈
'취업 사기'라고 했다. 일본제국주의의 여자근로정신대(여자정신대) 동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자정신대는 성노예로 착취당한 '위안부'와 달리, 일본 기업의 강제노역장에 끌려가 노예노동에 투입된 여성들이다. 이들의 동원 과정을 추적한 일본인 역사학자가 '취업 사기'란 표현을 썼다. 평생 근현대사를 연구한 야마다 쇼지 릿쿄대 명예교수가 70대 중반인 2005년에 논문에서 했던 말이다.
바로 이 여자정신대 문제와 관련해, 29일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가 70여 년 만에 피해자들의 한을 약간이나마 풀어주었다. 대법원은 정신대 피해자들인 이동련·양금덕·박해옥·김성주 할머니와 유족인 김중곤 할아버지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원고들은 자신들이 미쓰비시한테 노예노동을 당했다는 사실을 사법적으로 확인받게 됐다. 그리고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총 5억 6208만 원을 미쓰비시를 상대로 청구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됐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지난 10월 30일의 강제징용 판결 때 보인 것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판결 당일에 이수훈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전범기업들의 법적 책임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발뺌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여자정신대를 포함해 강제징용자의 전체 규모가 다 드러나면,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할 액수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징용자가 안 나온 가정이 없었을 정도였다. 이승우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여성의 손해배상청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 대장성 관리국 기록에 의하면, 1938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 내에서 동원된 남녀 징용자는 약 537만 명이었고 행정관청에 의하여 알선된 자는 40만여 명으로 분류되어, 통계의 중복을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 동안 순수한 징용자가 위안부를 제외하고 약 520만 명 정도로 적지 않은 숫자였고, (제2차 대전) 종전에 가까운 시기에는 당시의 인구수를 감안한다면 어느 집이든 남녀 징용자가 없는 집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 2015년에 한국동북아학회가 발행한 <한국동북아논총> 제76호에 수록.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해방 전년도인 1944년에 조선인 인구는 2512만 174명이었다. 한편, 11년 뒤인 1955년의 전국 가구 숫자는 380만 7123호였다.
'위안부'를 제외하고 1938~1945년에 어떤 형태로든 동원된 사람들이 520만 정도였다면, 한 집에서 한 명(여성 혹은 남성) 이상이 어떤 이유로든 동원됐다는 말이 된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같다고 가정한다면, 두 집에서 한 명 이상의 여성이 동원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세상이 얼마나 흉흉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주의할 게 있다. 두 집에서 한 명 이상의 여성이 동원됐다는 말이지, 두 집에서 한 명 이상의 여성이 해외로 끌려갔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 집에서 한 명 이상이 국내 혹은 해외로 동원됐다는 의미다. 그중에서 해외로 동원된 여성의 숫자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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